좋은 글을 쓴다는 것
좋은 글을 쓴다는 것
  • 안윤겸 기자
  • 승인 2020.07.1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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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연락하던 친구들 몇 명을 붙잡고 좋은 글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몇몇 친구들이 말하길, ‘좋은 글이란 짜임새 있고 고급스러운 미사여구로 이뤄진 글’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힘들 때 위로가 돼주는 글’이 좋은 글이란다. 아마 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좋은 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대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항상 좋은 글을 쓰기를 갈망해왔다. 수없이 글을 쓰고, 글쓰기 상을 휩쓸어도 봤지만 대체 좋은 글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참 어렵다. 2년의 고등학생 시절 동안, 학교 영어 신문 기자로서 과학 기사, 학교 취재 기사 등 다양한 영문 기사를 작성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 글들은 아무리 읽어보고 고쳐봐도 좋은 글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분명 열정을 가지고 참여했던 활동임에도 내 기사는 단순히 소식을 담은 글자들의 나열뿐이었다. 신문 기사 특성상 소설이나 수필보다는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기사들은 왜인지 심심하게 느껴졌다.
몇 달 전, 신문에서 우연히 김정선 작가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한국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사어가 돼가는 단어들과 재미있는 표현들이 소개됐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읽어 내려가다 기사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굳어있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만 19년을 살아왔는데, 나를 담아내기 위해 꼭 영어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내 열정과 진심을 담아내기에 한국어보다 더 좋은 언어가 어디 있을까. 어린 시절 서툰 글씨와 맞춤법으로 썼던 글을 꺼내 다시 읽어봤다. 화려하고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도 다채로운 표현들로 나를 담은 소소한 글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꼬마의 글에 푹 빠져 읽다 보니 문득 길을 가면서도, 밥을 먹다가도 휴대전화에 소설과 글들을 저장해서 읽는 친구가 떠올랐다. 정신없이 글을 읽는 친구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친구는 매번 머쓱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걸 읽을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읽었을 때 시간이 빨리 가지만, 그 시간이 후회되지 않는 글. 그것이 좋은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조금씩 써 내려갔던 글처럼, 내가 19년간 함께 해 온 우리말로 진정성 있게 내 열정을 담은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이제 포항공대신문사의 기자로서, 누군가 내 기사를 읽고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중립성과 정확성이 기본일지라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기사가 아닌, 맛깔스러운 표현들과 기자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글’을 쓸 것이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