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에게’
‘나의 사춘기에게’
  • 김지윤 / 인문사회학부 대우조교수
  • 승인 2024.06.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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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춘기에게’. 이것은 이미 지나간 나의 사춘기에 대한 다소 새삼스럽고 때늦 은 호명이 아니라, 내가 대학에서 처음 강 의하게 됐을 때 한 학생이 자신의 ‘인생 노 래’라며 추천해 준 곡의 제목이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곧 보컬 안지영의 매력적인 보이스 톤과 어우러지며 ‘볼빨간사춘기(BOL4)’ 특유의 감성을 만들 어낸다. 그러면서 다들 아름다운 시절이라 고 입 모아 말하는 청년기의 시작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 도 언젠가는 그 아픔을 딛고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담하게 이야 기한다. 가사에 담긴 진솔함 때문일까. 이 곡은 발표된 지 7년여가 지난 지금도 마치 자기의 이야기 같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꾸 준히 사랑받고 있는 듯하다. 내게 이 노래 를 처음 알려준 학생도 자신이 대학에 와서 도 뚜렷한 목표가 생기지 않아 상상했던 것 만큼 멋진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있으 며, 아직 사춘기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 다며 이 곡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청년기는 실로 반짝이고 아름다운 순간들로만 가득 찰 수 있는 것일 까? 혹은 그래야만 온당한 것일까? 나와 함 께 글쓰기 과목을 들으며 대학에서의 첫 학 기를 마친 친구들을 포함해, 좌충우돌하며 청춘의 시기를 통과해 가고 있는 독자들은 이미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 이다. 1999년 초연된 박근형의 희곡 <청춘예 찬>은 ‘새싹이 돋는 봄철’이라는 뜻을 지닌 청춘이 그 이름과는 달리 남루하고 보잘것 없는 모습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관습적으로 청춘에 붙이는 수식어와 달리 청춘이 밝은 것일 수만은 없 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대 학교 1학년 1학기 때의 한 교양 수업에서였 다. 5월쯤이었을까? 교수님은 자신이 생각 하는 청춘에 대해 A4용지 1쪽 분량의 글을 자유롭게 써 오라고 하셨다. 자세히 기억나 지는 않지만, 그 과제를 받아 든 나는 조금 은 상투적으로 남들이 이야기하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앞으로 나의 미래에 도래할 것 들을 향한 기대감에 대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러나 다음 강의 시간에 근처에 앉 았던 학우들과 글을 바꿔 읽으면서 나는 부 끄러워졌다. 학우들이 생각한 청춘의 모습 은 다종다양했고, 그중 내가 묘사한 것은 청춘에 대한 가장 납작한 상상이었기 때문 이다. 이후로는 모든 글에 나만의 의견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하 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기댄 타성적인 글 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맡은 글 쓰기 과목에서 나와 상담하는 학생들은 대 개 글에 자신의 의견을 넣으라는 주문을 듣 곤 한다. 이는 과거의 나 자신에게 해 주는 말인 동시에, 기존의 연구 내용이나 상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연구자로서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 후배 연구자인 학생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다양한 주제나 소재에 대해 나만의 의견 을 정립하고 그것을 정련된 언어로 ‘출력’하 려면 그에 상당한 값의 ‘입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청춘은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만, 대학생이라는 시절은 많은 시도나 경험 과 그로 인한 실패가 꽤 관대하게 허용되는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많은 것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 해 보면 좋겠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로부터 얻은 자신만 의 생각과 느낌을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자. 언제가 됐든 늦은 것은 없 으니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 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지만 귀찮음과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해 보 지 못했던 드럼을 박사 논문을 쓰던 중에 배웠다(타악기 연주는 스트레스 해소에 매 우 유효하고 적절한 해결책이다). 그때도 배 우기에 좀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 가 원하는 곡을 즐겁게 연주할 수 있을 정 도는 된 것 같다. 운동신경은 영 별로이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전부터 테니스 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테니스 경기를 즐 겁게 ‘볼’ 수 있게 됐다(즐겁게 ‘할’ 수 있다 는 의미는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은 프랑스에서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인 롤랑가로스가 한참 진행 중이어서 매일 즐 겁게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곧이어 7월에 는 영국에서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이 시작될 터이다. 다가올 여름은 ‘사춘기’ 가 아닌 나에게도 기대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