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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6구에 위치한 생제르맹데프레 교회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가 잠들어있다. 파리에 머물다 그 주변을 지날 때면, 나는 빠짐없이 생제르맹데프레에 들러 부속 예배실 한편에 놓인 그 무덤 앞에 서곤 한다. 근대학문 전반에 그가 끼친 영향은 가늠할 길 없이 크지만, 그의 고전적인 합리주의는 어떤 면에서 지금 21세기 현실과 더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것만 같다. 데카르트는 그의 책 방법서설에서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실체이원론을 논하는 가운데,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구분법을 제시했다. 그중 첫번째가 바로 ‘언어를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이다. 데카르트가 스웨덴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고 삼백 년 뒤,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공학의 개척자였던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의 충분조건으로 언어 모방게임을 제안했을 때, 그는 분명 데카르트의 글을 참고했을 것이다. 이제 놀랍도록 그럴듯한 글을 써내는 인공지능 챗봇이 연일 화제가 되는 이 시점에, 여러분은 이 데카르트의 주장이 마침내 기각됐고 따라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존재론적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럴듯한 글을

사설 | times | 2023-03-01 21:17

만화/만평 | times | 2023-03-01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