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건)

1 물질문명, 정보 그리고 둔감함의 문제물질문명이 발달해갈수록 커지는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 생명의 근본 문제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성을 해치는 것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둔감함이야말로 현대문명이 낳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이러한 둔감함은 특정 사건에 있어서 매스미디어에 의해 사실상 강제로 강화되며 보다 일상적으로는 언어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커지고 있다.이라크전의 폭격 장면이나 9·11 비행기 테러 장면 등을 텔레비전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그 과정에서 죽었을 수많은 생명과 그들을 잃은 살아남은 자들의 지극한 슬픔은 어느덧 잊어버리고, 흡사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도 된다. 마찬가지로 몇몇 욕설을 발어사처럼 쓰다 보면, 욕이 일상화된 사회 현상 자체를 의식할 수조차 없게 된다.이러한 예들은 미디어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 다루는 사건들 모두를 ‘정보’로 동일화함으로써 미디어는,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인간적인 감수성을 그만큼 둔하게 만든다.미디어의 이러한 메커니즘은 언어의 일상적인 사용 방식,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잘 보여주

학술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2006-12-06 00:00

1. 과학자의 업무와 의사소통행위‘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상황에서, 과학자도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해야 한다는 점을 따로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일 수 있다.그러나 이공계 학생들이나 대학들이 이를 명심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 등의 의사소통능력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과, 그것을 교정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찾기 어려운 대학교육 과정의 현실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한국어 의사소통 교육의 필요성을 의심하거나 영어 강의의 전면화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이공계 대학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현실을 대하면 사태가 한층 명확해진다.사정이 이러하므로, 과학도 및 과학자, 과학기술자 들 또한 의사소통능력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연구만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연구논문을 제대로 쓰지 않고서는 연구 성과를 발표할 수조차 없는 까닭이다. 연구자로서의 경력이 쌓여 직급이 높아질수록 의사소통 관련 업무의 비중이 늘어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연구팀을 관장하는 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연구계획서와 보고서 등을 작성하거나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에 많은

학술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2006-11-22 00:00

1. 의사소통행위의 실용적인 특성의사소통행위로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행위는 모두 실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전 논의에서 밝혔듯이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세계에 충격을 가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의사소통’ 행위 자체가 사회성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에 비추어서도 그러하다.‘실용’의 의미를 좀 더 좁혀 보다 일상적인 맥락으로 써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성년의 사회구성원이 행하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상당 부분은 직장이나 학교 등 공적인 자리에서 행해지게 마련이다. 현대인의 준거집단이 가정 밖에서 마련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일기 쓰기나 1차 집단 내의 정감적인 언어활동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사소통행위는 주된 사회 활동으로서 실용적인 목적과 효과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실용적인 의사소통행위의 주요한 경우들을 우리는 공적인 글쓰기·말하기라 일컫는다. 실용적인 글쓰기의 예로는 공문서, 보고서, 제안서, 공적인 메일이나 공고 등의 작문을 들 수 있다. 한편 업무상의 전화 통화나 응대, 자기소개나 인터뷰 등에 각종 회의와 프레젠테이션 등에서의 발언이 실용적인 말하기의 예가 되겠다.이렇게

학술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2006-11-08 00:00

1. 글쓰기의 어려움과 중요성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글을 쓰는 일은 대단한 고역이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인터넷에 리플을 단다거나 친구에게 짤막한 문자메시지를 남길 때 등을 제외하면, 사회활동으로서의 글쓰기는 언제나 우리를 긴장시키게 마련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아니 이들에게는 글쓰기야말로 일종의 천형(天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는 일보다 더한 고문이 어디 있을까.글쓰기가 이리 고된 것은, 명료하게 의식하든 못하든 글을 쓰는 일의 의미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은 사람’이라는 본질주의적인 명언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의사소통행위로서의 글쓰기란 우리의 주된 사회활동임을 너나없이 알고 있는 것이다.글로 관계 맺는 주변사람들에게 우리들 각자는 항상 글로 판단되게 마련이다. 연구계획서를 잘 쓰지 못하면 연구비를 따올 수 없고,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잘 쓰지 못하면 학위 취득이나 논문 게재를 바랄 수 없다. 제안서를 잘못 쓰면 일에 착수조차 못하고, 시험 답안을 제대로 못쓰면 좋은 학점은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뿐인가. 메일 한 통을 성의 없이 쓰면 무례하거나 실없는 인간으로 낙인

학술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2006-10-18 00:00

1. 읽기의 역사와 의미어떠한 사상(事象)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 기원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읽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류 최초의 읽기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동양의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읽기 행위는 갑골(甲骨)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기원전 13세기 경 은나라에서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생긴 균열을 통해 신의 뜻을 읽고자 했다. 거북점[龜卜]이라는 이러한 읽기 행위는, 농경문화를 이룬 주나라에 이르러서 시초(蓍草)라는 풀의 줄기를 사용하는 시서(蓍筮)로 이어지고 후에 대나무를 사용하는 서죽(筮竹)으로 바뀌어 의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노태준, , 한국교육출판공사, 해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의 뜻을 헤아리고자 했던 ‘읽기의 목적과 의도’이다.그 후 읽기 행위는 그 대상을 더욱 넓혀 천사만물과 인간까지 끌어안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일월성신을 읽는 천문(天文), 산천초목을 읽는 지문(地文), 인간과 그들의 세상을 읽는 인문(人文)이다. 이들 개념에서 ‘문(文)’의 의미는 ‘감추어져 있는 기본원리의 발현’이다(조동일, ). 여기서, 읽기 행위의 본질이 확장되어 동양의 학문체계가 성

학술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2006-09-27 00:00

ⓛ 의사소통의 자세와 전략② 읽기와 해석 : 세계 이해의 부단한 도정③ 쓰기와 전달 : 타인과 하나 되기④ 실용적 의사소통 : 목표와 수단의 일치⑤ 과학 커뮤니케이션 : 전문가와 일반인의 이중주⑥ 의사소통의 즐거움1. 쉽고도 어려운 일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행하되 잘하기는 쉽지 않은 일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말하고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여섯 살만 되어도 말을 불편 없이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웬만큼 한글을 깨치게 되지만, 말과 글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잘한다’와 ‘자유롭게’를 결합시키면 그 어려움이 한층 커진다. 듣고 읽기에 좋은 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기는 대단히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이 어려움은 말하기와 글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생각보다는 어렵고, 글자가 아니라 글을 읽는 것 또한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따라서 다양한 언어 구사 능력을 제대로 갖추는 일 모두 일상적으로 행하되 잘하기는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정의할 때 ‘언어의 사용’을 종차요소로 쓸 만큼 언어란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지만, 입 안의 혀 같은 모국어라 할지라도 제대로 구사하기는 어렵다

학술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2006-09-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