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보다 얇은 초박막 패치로 심혈관 건강 진단한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초박막 패치로 심혈관 건강 진단한다
  • 정성준 / 신소재공학과 교수, 백상훈 / IT융합공학과 통합
  • 승인 2022.05.0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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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웨어러블 센서로 그리는 맥파 지도
▲100개의 웨어러블 센서로 그리는 맥파 지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심장 관련 질병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는 2019년 기준 890만 명으로 심혈관 질환이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9년 심혈관 질환 관련 진료비가 한 해 1조 7,000억 원에 육박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심혈관 질환의 조기 진단과 예방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맥파와 심혈관 질환

심혈관 질환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의 하나는 바로 맥파를 분석하는 것이다. 맥파는 심장 박동에 의한 혈액의 흐름이 몸에 전달되는 파동으로, 맥파의 모양, 크기, 속도 등의 분석을 통해 고혈압, 심근경색, 동맥경화 등 각종 심혈관 건강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심혈관 질환의 증상은 평상시에 뚜렷하게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맥파를 일상생활에서 연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에 사용되는 맥파 측정 기기는 보통 혈압을 잴 때 쓰는 커프(Cuff)를 팔에 착용하거나 딱딱한 집게 모양의 산소포화도 센서를 손가락에 착용하는데, 이런 기기들은 24시간 착용이 어려워 병원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웨어러블 맥파 측정 기기 동향

병원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심혈관 건강 상태를 상시 관찰하기 위해 맥파 측정이 가능한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스마트워치 기반의 광 혈류 측정기기(Photoplethysmogram, PPG)이다. PPG 기반 스마트워치를 통해 맥파 신호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호흡량, 심박수 등을 추정할 수 있다. PPG는 피부에 빛을 비추고 혈액량 변화에 의한 빛의 흡수량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광학적 방식으로 맥파 신호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이런 스마트워치의 아랫면을 살펴보면 아주 작은 크기의 LED와 광센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움직임에 의해, 혹은 주변 빛이 스마트워치와 피부 사이에 새어 들어가 신호가 왜곡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아직 상용화 단계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주목할만한 연구 분야로 피부 부착형 웨어러블 기기 분야가 있다. 전자 기기를 머리카락 두께 수준의 아주 얇은 기판에 제작함으로써 피부에 부착해도 사용자가 거의 인지할 수 없어 장시간 착용이 가능하고, 센서가 피부에 밀착돼 있어 다양한 움직임이나 주변 잡음에도 높은 정확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피부 부착형 압력 센서를 통해 맥파를 획득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치 손목에 손가락을 갖다 대어 맥박을 느낄 수 있듯이 맥파에 의한 물리적 박동을 측정함으로써 맥파 신호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맥박은 손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충분한 압력 변화를 야기하기에 PPG 방식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게 센서를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피부부착형 기기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첫째로 전자 기기의 제작 비용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제작 공정의 개발이 필요하며, 둘째로 의료기기로 사용될 수 있을 만큼 신호의 정확도가 개선돼야 한다.

잉크젯 인쇄 기반 센서 어레이를 통한 맥파 획득

본 연구팀은 머리카락 두께보다 얇으면서도 정확하게 맥파 신호를 획득할 수 있는 초박막 웨어러블 센서 패치를 개발했다. 이를 위해 먼저 일상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잉크젯 인쇄 기술을 이용해 센서를 개발했다. 인쇄 기술은 반도체 제작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세대 공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존의 반도체 제작 기술은 대규모의 공정 장비 및 시설과 고온, 고압의 환경이 필요하다. 반면에 잉크젯 인쇄 기술은 미량의 잉크를 필요한 곳에만 토출하기에 공정 비용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또한, 휘어지는 유연 기판에 직접 인쇄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잉크를 원하는 곳에 인쇄할 수 있어 다양한 종류의 웨어러블 기기 제작에 있어 유망한 기술이다. 연구팀은 전자재료 잉크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인쇄 공정을 정교하게 최적화함으로써 전자 회로 구성에 가장 기초적인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 및 어레이를 상용화 수준에 가깝게 개발했고, 이를 머리카락 두께보다 얇은 초박막 유연 기판에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고현협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피부가 촉각을 감지하는 원리를 모사해 압력 센서를 개발했다. 피부의 미세 패턴 구조를 본떠 미세 구조체를 제작함으로써 압력이 가해졌을 때 미세 구조체끼리의 접촉 저항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해 압력을 읽어냈다. 이렇게 제작한 피부 부착형 센서를 손목에 부착해 맥파가 동맥을 지나갈 때 발생시키는 압력의 변화를 읽어 맥파 신호를 성공적으로 획득했다.

또한, 연구팀은 맥파를 손목 위의 단일 지점에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센서 어레이를 통해 2차원으로 획득하는 방법으로 맥파 신호의 정확도를 현저히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했다. 기존의 웨어러블 맥파 센서는 단일 지점에서만 신호를 측정해 동맥 위에 정확히 위치시키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센서를 부착하는 위치에 따라 맥파 신호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100개의 센서 픽셀을 구성해 단일 지점이 아닌 특정 면적 전체에서 위치에 따른 맥파 신호를 2차원으로 획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2차원 맥파 지도를 그려냈다. 이렇게 얻어진 맥파 신호 지도를 분석함으로써 가장 정확한 맥파 신호를 획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동맥혈관 위치까지 추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피부 부착형 맥파 센서를 통해 일상에서 각종 심혈관 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동맥 카테터 삽입 등의 다양한 의료 분야에도 활용될 가능성을 보였다. 해당 연구 성과는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적 권위지인 ACS Nano에 출판됐다.
 

기대 전망과 향후 과제

해당 연구는 잉크젯 인쇄 기술이 차세대 반도체 제작 공정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인쇄 기술을 활용하면 저비용으로 자유롭게 디자인을 바꿀 수 있어 △개인의 체형 △신체 사이즈 △굴곡 등을 고려한 개인 맞춤형 웨어러블 기기를 제작할 수 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마치 인쇄된 신문이나 책이 우리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듯이, 전자 기기도 인쇄되는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고 모든 것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시대에 웨어러블 의료기기가 가져올 새로운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 그간 병원에서만 행해지던 질병의 진단이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해지고, 병원에 가지 않아도 개인의 건강 상태를 상시로 체크하며 질병을 예방 가능한 시대를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우선 더욱 높은 성능 및 안전성을 갖는 반도체 개발을 위해 다양한 전자재료 잉크가 개발돼야 한다. 더불어 인쇄 공정은 기존 실리콘 반도체에 비해 소자가 크기 때문에 더 정교한 해상도를 갖는 초미세 공정의 개발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다양한 고성능 반도체 재료, 차세대 잉크젯 인쇄 공정, 3차원 집적 기술을 통한 고해상도 반도체 연구 등을 이어가고 있어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분야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피부부착형 맥파 센서를 통한 2차원 맥파 신호 획득 결과
▲피부부착형 맥파 센서를 통한 2차원 맥파 신호 획득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