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에 놓인 시한폭탄, 포항시외버스터미널
대로변에 놓인 시한폭탄, 포항시외버스터미널
  • 김휘 기자
  • 승인 2017.10.11 0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후된 터미널 개선은 필수, 포항시와 (주)포항터미널의 결단이 필요한 현시점
화재로 드러난 포항시외버스터미널의 민낯
지난 8월 14일 오전 1시경, 상도동에 위치한 포항시외버스터미널(이하 시외터미널)에 불이 났다.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아 45분 만에 진화됐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시외터미널에는 화재 며칠 뒤부터 지난달 말까지 천장 및 벽면의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장 감식으로는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이번 화재가 시외터미널의 노후화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건물의 노후화로 인한 합선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실제로, 시외터미널은 지어진 지 올해로 32년이 됐지만,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 적이 없어 외형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매우 낡은 상태다. 건물 벽면의 균열이나 대기실의 좌석은 군데군데 보수가 필요하고, 비가 오면 지하에는 물이 찬다. 또한, 지반 침하가 진행되고 있다. 이용자들이 각종 재해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인터뷰차 방문한 9월 중순에, 시외터미널은 화재 보수가 한창이었다

시외터미널의 노후화로 인해 터미널 상인들도 열악한 환경 아래 있다. 현재 시외터미널 건물은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터미널 상가 중 어느 한 곳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번 화재로 큰 피해를 본 상인들은 당장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막막하다. 시외터미널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화재보험 가입을 시도했으나, 건물의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보험회사가 거부했다”라고 밝혔다. 아직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건물 관련 보험사가 화재에 대한 구상권(求償權)을 청구할 시 상인들은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현재까지의 판례로는, 원인 불명의 화재에 대해서는 임차인이 피해액 중 적지 않은 비율을 보상해야 한다.
따라서, 시외터미널을 개축하거나 신축 이전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외터미널과 포항고속버스터미널(이하 고속터미널) 이전 문제는 포항시의 우유부단하고 절차를 무시한 의사결정 과정과 (주)포항터미널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있다. 무엇이 문제이며 해결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포항시의 신중하지 못한 도시계획 변경
경상북도는 2001년, 시외터미널과 고속터미널을 현 포항역 주변의 외곽 지역으로 모아 통합 터미널로 운영해, 시외터미널이 도심에 위치해서 발생하는 교통체증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1만 6,500㎡에 달하는 흥해읍 성곡리의 땅이 자동차정류장으로 확정 및 고시됐다. 2007년, 포항시는 도시교통정비계획 고시를 통해 위 두 터미널의 이전을 다시금 예정했다. 포항시는 2008년에 발표한 ‘2020 포항 도시기본계획’을 통해서도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하지만, 당시 수년 안으로 예정된 신포항역 준공 및 인근 부지 개발이 일정대로 추진되지 않았고, 포항시 인구도 2020년까지 90만 명이 될 것이라고 과도하게 예측한 것과 달리 유지되는 것에 그쳤다. 또한, 북구 양덕동과 남구 오천읍 등 외곽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이 있었고, 2012년 말 시외터미널에서 포항시청을 거쳐 포항IC로 연결되는 왕복 6차선이 개통되면서 기존에 경상북도가 지적한 교통체증 문제가 일부 해결됐다. 한편, 포항터미널은 2013년에 (주)우진건설과 (주)경관종합건설에 인수됐는데, 이들 기업은 터미널 이전 예정지인 성곡지구의 땅값이 높아 땅 매입이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며, 현 시외터미널 자리에 복합터미널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2015년 포항시가 해당 제안에 동의하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한 없던 포항시의 터미널 이전 약속은 15년 만에 사실상 깨졌다. 포항시는 이러한 터미널 이전 계획 취소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복합터미널 건설을 장려하고 있다는 것과 터미널 이전이 과도한 인구 예측에 맞춘 것이라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터미널 이전을 처음 계획하던 2001년에 이미 포항시 인구는 8년째 정체 중이었고, ‘이전 계획을 취소함으로써 주민 및 투자자들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상투적인 약속만 하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는 포항시가 현실감 없이 장밋빛 미래만 그리며 도시계획을 세웠다는 점과 약속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포항시의 태세 전환으로 성곡지구의 지주 및 투자자, 일부 북구 주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2007년 3월부터 ‘성곡지구’라 불리는 성곡리 땅 20만 7,000여㎡가 터미널 이전을 전제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 거의 마무리돼 도로포장만 남겨놓은 상태다. 개발의 전제인 터미널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 4월 ‘포항시 남구 상도동 ㈜포항터미널 복합환승센터 건립 결사반대 투쟁위원회’는 포항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포항터미널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포항시와 경상북도 행정을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법적으로 포항시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박경열 포항시 의원은 지난 4월 “시민과 시민의 대표기관인 시의회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고속버스터미널과 대형 유통시설까지 합해진 복합환승센터를 추진하는 것은 허가권자인 경북도의 재량권 남용이며, 구태의연한 행정의 표본”이라며 포항시를 질타했다.

이전도 안 되고, 복합환승센터 건립도 안 된다?
(주)포항터미널은 작년 5월 일반복합환승센터(이하 복합환승센터) 사업 제안서를 경상북도에 제출했고, 올해 3월 경상북도는 복합환승센터 제삼자 사업자(시, 도가 아닌 민간 사업자) 공모 공고를 냈다. 제삼자 사업자 평가위원회는 공무원, 대학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돼, 사업자의 자본력과 재무상태, 유지관리 계획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그리하여 1천 점 중 700점이 넘으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한데, 유일하게 응모한 (주)포항터미널이 5월에 있었던 이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복합환승센터가 이른 시일 내에 건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는 포항시가 (주)포항터미널의 계획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포항시 교통지원과는 이에 대해 “(주)포항터미널의 자본금은 300억여 원으로, 현대 등 재정 규모가 상당한 기관의 투자가 없는 한 3,000억 원이 넘는 총사업비를 감당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투자가 유치된다면 포항시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생각이 있다”라고 밝혔다.
제삼자 사업자 선정 탈락 이후, (주)포항터미널은 현재 노후화된 시외터미널을 개축하는 것은 건물 구조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힘들고, 터미널을 운영하는 것도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밝히며 포항시에 여객자동차터미널 사업면허 폐업 허가 신청을 냈다. 쉽게 말해, 시외터미널을 이용하는 하루 5,000명 이상의 승객들을 볼모로 잡고, ‘면허 반납’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물론 포항시는 이것을 즉각 반려했지만, (주)포항터미널은 자신들의 위기감을 공격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현재 (주)포항터미널은 대기업의 투자 확약을 받아낸 뒤 다시 한번 사업자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막연하게 미룰 수 없는 문제, 빠른 결정이 필요
시외터미널은 지난해 11월 정밀안전진단에서 안전 C 등급, 종합 D 등급으로 사용 제한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언제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이 터미널을 이용하는 수많은 승객들, KTX 도입 후 매출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주)포항터미널, 어긋난 기대로 실의한 성곡지구 투자자들, 언제 어디에 복합환승센터가 지어질지 몰라 1년 단위로 불리한 계약을 맺는 시외터미널 상인들. 이들 모두가 현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며, 방향성 없는 포항시의 대처에 불안감은 점차 증폭되고 있다.
두 터미널의 성곡리 이전과 3,000억 규모의 복합환승센터 건립 둘 다 현실적으로 힘들어진 만큼, 다음 사업자 공모 때도 유일한 응모자일 가능성이 높은 (주)포항터미널이 현재의 과도한 계획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축소하고, 포항시가 이를 지원하는 것이 그나마 수용 가능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터미널 사업은 시 교통정책의 흥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이고, 현재 많은 이익단체와 주민들이 신경 쓰는 문제인 만큼, 유관 기관과 사업자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신중해야 한다. 하나, 지금은 문제의 실마리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실마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 포항시와 경상북도의 결단력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