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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이 적는 인문과목의 중요성
[389호] 2017년 10월 11일 (수) 김종원 / 산경15 .
지난 6월 20일, 누군가에겐 방학의 시작이었을 달콤한 날 나는 서울대 정문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번 방학때 수강했던 과목은 ‘철학 개론’과 ‘인간관계의 심리학’이라는 과목이었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첫 수업시간에 꽉 찬 칠판이 아닌 빈 책상에 집중했고 두 번째 수업시간에는 빈 가방, 가득 찬 배터리를 들고 교실에 들어갔다. 그때 철학 강의의 첫 주제는 ‘도덕이란?’이었다.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내게 피부로 다가오는 주제였다. 철학 개론 수업에서는 시대에 따른 다양한 철학 주제들을 다뤘으며, 이것들은 누구나 삶에서 가졌을 고민에 대한 깊은 고찰이었다.
‘교양’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미숙한 상태의 개인이 사회와의 갈등 관계를 거치면서 더욱 성숙한 상태로 발전되는 양상’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진다. ‘교양과목’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깊이 생각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의 미숙한 상태를 깨닫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과목이라 생각한다.
심리학 과목은 공대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만 배우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의 감성적인 면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좋았다. 철학 과목은 이성적으로 인간의 생각, 사상을 펼쳐나가는 과목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논리적임이 내게 준 인상은 더 깊었다.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철학 과목의 일부와 그 과정에서 느낀 인문학에 대해 적어보겠다.
나는 평소 도덕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도덕은 인간이 이성의 최종점에서 공통으로 지켜야 할 기준이다. 쉽게 말해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기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도덕은 어떤 고귀한 의미를 가지지 않고 단지 집단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생긴 진화의 산물이라는 의심을 평소에 갖고 있었다. 이 회의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먼저 ‘도덕’이라는 정의가 필요하게 된다. 비록 진화를 통해 인간이 공익을 추구하게 발전했을 수 있지만, 그 공익의 추구가 도덕과 일치하는지를 증명할 수는 없었다. 만약 공익의 추구와 도덕이 같다면 식량의 생산을 늘린 비료의 발명가이자 독가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리츠 하버는 도덕적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필자는 인생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통속의 뇌’라는 의견이 있다. 우리가 사실은 통속의 뇌이며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이 허구라는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주장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허구라면 실제의 ‘통’과 ‘뇌’는 우리가 사는 허구의 ‘통’과 ‘뇌’와 같을 이유가 없다. 결국, 그 실제 세계는 우리가 경험 가능한 영역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단어는 대상과 적절한 인과적 결합을 가질 때만 그 대상을 지시할 수 있다. 따라서 ‘통속의 뇌’, “허구 속 우리가 현실을 지칭하는 것은 모순이다”라는 한 철학자의 의견을 배웠다.
필자는 인문학이 주관적이며 절대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위와 같이 체계적인 논리를 따르는 반박들이 철학에는 녹아있었다. 철학의 공리가 되는 부분이 적어 논리를 절대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웠지만, 특정 주장에 대한 반박만큼은 논리적으로 이루어짐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심리학을 통해서는 사람의 감성에 대해 지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작게는 나라는 존재서부터 크게는 다른 사람들까지 본능적으로, 이성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가운데 인간이 특별히 가지는 변수들을 발전시킬 방법, 경험은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최근 컴퓨터공학은 장안의 화제이다. 인간이 오랜 시간 쌓은 탑이 하루아침에 딥러닝 컴퓨터에 추월당하고 많은 학문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예시로 얼굴인식 기능은 20세기부터 사람이 정립한 기법보다 21세기 들어선 딥러닝을 통한 기법이 뛰어나다. 금융 분야 역시 최근 골드만삭스 등 다양한 금융기업들이 재무적인 측면을 모두 컴퓨터 인력으로 대체하고 있다. 현재 정복되지 않은 분야들도 많지만 앞으로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는 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철학 수업에서는 본질을 고민하며 정의되지 않는 것들을 몇백 년 동안 연구해 온 철학자의 사고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철학자들은 모래사장과 같이 아무것도 쌓이지 않을 것만 같은 기반에 지금의 철학과 같이 높은 탑을 쌓았다. 공학자들은 탑의 부품들을 자연에서 찾아올 수 있었지만, 인문학을 구성하는 탑의 재료는 사람이다. 그 탑의 인문학적인 지식은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감성적인 우리에게 충분한 연료가 됄 것이라 생각한다. 공학자인 우리는 답을 찾아가는 기법은 어려워도 답이 참 또는 거짓으로 나오며 그 결과들을 얻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지 모른다. 공학으로서 한계가 닥쳤을 때 인문학을 공부하는, 생각하는 노력과 끈기는 공학도에게 색다른 생각의 방향을 줄 것이다. 또한, 그 공학의 방향이 사람을 향할 때 인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 인문학은 진정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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