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소개 | 조직 | 연혁 | 신문발행일정
> 뉴스 > 387호 > 칼럼 > 사설
   
속지 말자
[387호] 2017년 09월 06일 (수) .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면이 있다. 남의 말을 너무 잘 믿는다. 얼마 전 국내 신문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기(詐欺)와 무고(誣告)가 우리보다 인구가 2.6배나 되는 일본의 10배나 된다고 한다. 사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말이고, 무고가 많다는 것은 남들이 자기의 거짓말을 믿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정신없이 사 먹는다. 오래전에 인진쑥이 그다음에는 오가피가 좋다고 열풍이 불었다. ‘왜 좋냐’고 물어보면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냥 몸에 좋단다. 산수유 건강제품 사장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와서 “남자 몸에 좋긴 좋은데 말하기 곤란하다”라고 해서 대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사장이) 그 정도만 말해도 어디에 좋은지 우리는 다 안다’며 즐겁게 샀다. 하수오(何首烏)도 열풍이 불었다. 남자에게는 까마귀처럼 까만 머리가 나게 하는 발모 작용이 있고 여성에게는 여성 호르몬을 보충해 준다는 소문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열풍이 식고 별 관심이 없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좋은지 물어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얼마나’ 좋은지가 중요하다. 투자하려면 수익률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거 사두면 좋데’ 하고 사면 다 망한다. ‘얼마나’ 수익이 나며, 목표 수익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 위험은 ‘얼마나’ 큰지를 알아봐야 한다. 키코(KIKO)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거 좋데요. 그래요? 저도 하나 사야겠네요” 했지만, 시장(市場)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자 구입자들은 다 망했다.
한국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것을 열광적으로 먹듯이, 몸에 해롭다 하면 정신없이 비난한다.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몸에 안 좋다는 뉴스가 온 나라에 떠돌아다녔다. 그 말에 다들 흥분했다. 하지만 아무도 ‘얼마나’ 해롭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런 식이라면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몸에 해로운 방사선이 내리쬐기 때문이다. fMRI 검사도 엑스레이 사진도 찍으면 안 된다. 이들도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숨도 쉬면 안 된다. 공기 중에는 자동차 매연, 타이어 가루 등 수많은 유해물질이 있다. 그걸 어떻게 마시나? 마스크라도 하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것이 해로워도 얼마나 해로운지를 따지지 않으면 남들의 선동에 넘어가게 된다. 정부 예산에 꼬리표가 붙어있듯이 선동에는 이익집단의 꼬리표가 붙어있다.
얼마 전에 소동을 일으킨, 살충제에 오염된 사료를 먹은 어미 닭이 난 달걀은 인체에 조금이나마 이상이 오려면 날마다 5개씩 먹어야 한다고 한다. 이 소동은 진앙(震央)인 유럽의 언론은 사회면에 조그맣게 다루었지만, 한국 언론은 일면 헤드라인으로 크게 다루었다.
한국인들에게는 논리적·분석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교과서가 답이듯이 신문방송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문방송 보도 내용을 무조건 믿는다. 하지만 신문방송은 공익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이 아니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다. 그러므로 신문방송 보도 내용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 지난 미국 대선 하루 전까지도 뉴욕 타임즈는 힐러리가 트럼프를 92:8로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뉴욕 타임즈는 선거기간 내내 힐러리를 지지했다.
어떤 것이 이롭다면 ‘얼마나’ 이로운지를, 해롭다면 ‘얼마나’ 해로운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논리적·분석적 사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지만, 아직도 대중심리에 휩쓸려가는 심리가 남아있다. 하지만 진리는 민주적 다수결이 아니다. 다수가 틀리고 소수가 옳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모두 다 틀리고 혼자만 옳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아마 중세암흑기를 벗어난 후 수백 년에 걸친, 종교적인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사상에 대한 비판의 (서양) 역사가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말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양인들은 종교개혁기와 계몽기를 거쳐 수천 년 동안 자기들이 믿어왔던 것을 의심하고 비판했다. 우리도 그리했는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개화기에 그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안창호, 서재필, 윤치호 선생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하려면)‘국민성과 국민의식을 개조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서재필은 ‘한국인은 속임수 협잡 뒤통수에 능하다’고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부분적으로 수긍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 인당 국민소득이나 GDP가 서구 선진국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통렬한 반성이 없으면 진실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 다른기사 보기  
ⓒ 포항공대신문(http://times.postech.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포항공대신문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37673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 산 31번지 ) | TEL 054-279-2622, 2625
창간 : 1988년 10월 26일 | 발행인 및 편집인 : 김도연 | 주간 : 김진희 | 편집장 : 이민경(국문), 곽준호(영문)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도연
Copyright 2009 포항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reporter@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