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에서 전자 화폐로… 새로운 지불 수단의 등장
현금에서 전자 화폐로… 새로운 지불 수단의 등장
  • 박지후 기자
  • 승인 2017.04.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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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 거주하는 유학생 A 씨는 지갑 대신 카드 한 장만 가지고 다닌다. 덴마크 내의 상점들이 현금보다 카드 혹은 전자 화폐를 선호하기도 하고,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현금에 비해 A 씨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기 때문이다. A 씨뿐만 아니라 덴마크 내의 모든 사람, 심지어 노숙자들까지도 현금을 휴대하지 않고 카드와 전자 화폐만을 이용한다.
지난 1월 1일, 덴마크 중앙은행은 자국 화폐인 덴마크 크로네의 동전과 지폐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일부 필요한 지폐와 동전은 다른 나라에서 위탁 생산하며, 장기적으로 전자 화폐 ‘e 크로네’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현상은 덴마크뿐만 아니라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660년대에 가장 먼저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은 203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를 추진할 계획이다. 모든 상점에서 현금을 받지 않고 카드나 전자 화폐만 받는 형식이다. 이 정책들이 추진되는 이유는 현금 거래로 인한 비효율성과 현금 사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현금은 발행, 보관, 운반,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동전과 지폐 제조비용은 연간 1,500억 원에 달한다. 또,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금 사용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2012년 기준으로 미국 GDP(국내 총생산)의 1.2%에 해당하는 금액인 2,000억 달러(약 238조 7,000억 원)다. 또 현금을 이용한 지하경제가 구축돼 있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로는, 우리나라가 현금을 없애 지하경제가 양성화된다면 대략 20조 원에서 60조 원 이상의 세금이 추가로 확보될 것이다.
한국은행에서도 이달부터 ‘동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범 사업을 시작한다. 시범 사업 전, 국민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동전을 받더라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6.9%를 차지했으며, 그 이유로는 동전 소지가 불편하다는 응답이 62.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만약 동전 없는 사회 정책이 시행된다면 찬성하는가를 묻는 말에도 찬성하는 의견이 50.8%로, 23.7%인 반대 의견과 25.6%인 보통 의견에 비해 우세했다.
한국은행은 이 설문조사를 토대로 동전 없는 사회 정책을 시작하기 위해 지난달 3일 12개 업체를 시범사업자로 선정했다.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편의점에서는 고객이 물품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 잔돈을 선불카드에 충전하는 방식을 우선 추진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선불카드 충전 단말기가 편의점에 이미 설치돼 있으므로 비용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시범사업 홍보를 통해 새로운 잔돈 적립 서비스 출시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며, 이 서비스의 효과가 입증될 시 업종과 적립 수단을 다양화하고, 잔돈을 소비자의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이 사업의 실현을 통해 동전 휴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편 완화, 동전 확보·보관·지급·회수 등에 드는 사회적 비용 절감, 신종 전자지급서비스 활성화 및 기술 발전 도모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는 아직 이르다며,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한다. 먼저, 노인과 같이 금융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금융거래 취약계층들은 카드나 전자화폐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아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또, 이 사업이 정식으로 시행될 때 선불카드 충전 단말기를 설치하지 못한 상점들은 1,000원 단위 이상의 가격을 설정할 수밖에 없어, 가격이 반올림돼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보안 문제다. 잔돈이 남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액수를 포함해 시간과 장소까지 개인의 모든 거래 명세가 저장된다. 이 명세가 누군가에 의해 해킹된다면 개인의 사생활이 모두 유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청호이지캐쉬에서 운영하는 ATM기가 지난달에 해킹된 것을 비롯해 최근까지도 다양한 해킹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보안 강화라는 과제를 우선 해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동전 없는 사회는 스웨덴에서 시행할 예정인 현금 없는 사회와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아직 시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동전 없는 사회가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해 2020년에 큰 문제없이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