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이 시를 읽는다는 것
공대생이 시를 읽는다는 것
  • 장은하 / 신소재 14
  • 승인 2016.09.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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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어야만 놀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책과 담을 쌓고 지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서부터 경제, 정치, 종교를 넘어 소설과 수필집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뜻이 있고 흐름이 있는 ‘시’는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선입견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봄날, 문득 옛 생각이 났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친구는 시를 좋아했다. 기쁠 땐 기쁜 만큼, 슬플 땐 슬픈 만큼, 나와의 사이를 글감으로 쓴 시를 수줍게 보여주던 그 모습. 그때는 다 큰 남자가 낯간지럽게 웬 시를 쓰나 싶었는데, 그날은 유달리 시가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시를 읽고 있다.
봄날의 나는 도종환 선생님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집을 집어 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좋아하는 수필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의 저자이기 때문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이 책을 읽으면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기만 해도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선생님의 시 또한 그러리라 믿었다. 내 믿음대로 모든 시구에서 온기가 묻어났다. 30년이라는 세월의 뜨겁고 절절했던 순간들을 고르고 골라 담은 진심들이 온전하고 따뜻하게 전해졌다. 시집의 제목을 첫 구절로 담고 있는 작품인 ‘흔들리며 피는 꽃’이 마치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생각이든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벚꽃이 흩날리던 날씨 탓인지, 시집을 다 읽고 나서도 달빛에 은은하게 젖어있는 꽃나무가 그려진 표지를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었더랬다.
이렇듯 도종환 선생님의 시가 절절히 끓어오르는 위로라면,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담담히 다독여주는 위로로 다가온다. 수녀님의 시에서는 일상에서의 깨달음과 읽는 이를 위로하는 마음이 담백하게 묻어난다. <작은 위로>를 읽고 있던 여름날, 학교 신문에 한 편의 글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일기가 아닌 다른 글을 써본 지 오래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모험이었고, 두려움이 앞섰다. 그 두려움을 눌러주던 ‘진정 젖어서 / 살아 뛰는 / 당신의 힘찬 목소리를 / 나는 / 꼭 한번 듣고 싶거든요’한 구절. 언젠가부터 평화를 바라는 생각이라는 감옥에 도전을 가둬버린 나에게 슬쩍 손을 내미는 기분이었다. 그 작은 위로에 힘을 받아, 누군가에게 늘 꽃을 건네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수녀님처럼 읽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글이 쓰고 싶어졌다. 더불어, 내가 시를 읽으며 겪었던 따뜻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시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망설임 없이 위의 두 권을 골랐다. 하지만 시의 맛을 전부 전하지 못한 것만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수험생이었던 시절, 윤동주 시인은 끝없이 자아 성찰을 하는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이라고 무작정 외웠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입시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영화 ‘동주’를 보고 나니 이제는 그분이 그저 한 명의 시를 짓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펼치는 순간, 감탄했다. 그때는 서시가 이렇게 감동적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시의 맛이란 함축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숨겨진 화자를 찾아내는 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곱씹는 내 마음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인은 천재 같다. 시대를 넘어와 쉼표마저 신경 쓰며 조곤조곤 읊어보라 직접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글자마다, 자간조차도 정성과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시는 말로 만들어진 그림이라고 하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 마음속에 수묵담채화가 그려진다.
시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다. 솔직히 나는 무늬만 공대생이다. 명문이라고 손꼽히는 대학을 3년째 다니고 있으면서도 아직 공학도라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 ‘공대생이 시를 읽는다는 것’으로 제목을 정하긴 했지만, 이런 내가 공대생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몰아치는 과제와 시험에 허덕이는 학교생활 중에 시간을 적게 들이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볍게 시를 한 편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시를 읽게 된 이유도 잠깐의 여유를 얻기 위함이었다. 영어만 가득한 원서들을 보다가 예쁘게 손질된 우리글로 눈을 돌리면 정말로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는 이제 더는 답이 정해진 문제를 풀기 위해 시를 읽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읽고 즐기면 그뿐. 주어진 길을 빠르고 정확하게 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하늘도 바라보고, 새소리에 맞춰 시도 읊어보며 쉬었다 가는 것은 어떨까?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일 이 시대 엔지니어들의 여유와 감성이 있는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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