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 사유
이불 속 사유
  • 강민지 / 화학 15
  • 승인 2016.02.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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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 문을 열고 바깥으로 한 발짝 내디디려 하면 세찬 바람이 잔뜩 움츠린 몸 사이를 파고드는 겨울이다. 자꾸만 기숙사 방 한쪽을 차지한 침대 이불 속으로만 기어들어가게 된다. 겨울이라서 그러한지 자는 시간도 늘어난 것 같다. 아니면 방학이라 게을러진 탓인가.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이번 주말이면 울산에 사는 친구가 포항으로 놀러 오기로 했다. 강제적으로 오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저번 주말, 울산에서 그 친구와 놀러 다녔다.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친구의 보조 배터리를 빌렸으나 그게 발단이었다. 주머니에 그냥 넣은 채로 포항에 돌아와 버린 것이다. 물건을 받는 겸 포항 구경 하러 오기로 했다.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만난 지 이제 거의 3년이 되어 간다. 신기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같이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다. 같이 있고 싶고,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다. 그냥 무지 호감이다. 신뢰감 만땅. 부럽기도 하고, 왜일까 궁금해서 친구를 관찰하였었다. 관찰한 바로는, 비법은 바로 진부하지만 경청이었다. 이야기할 때 눈 마주치면서 잘 들어주고, 무슨 이야기든 집중하고, 반응이 꾸밈없고, 부정적인 편견도 없다. 이 친구한테는 다른 사람한테 하기 힘든 얘기나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들도 얘기할 수 있고, 나를 망설임 없이 드러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취향이나 가치관을 존중해주고 비웃지 않고, 격려해준다. 이 친구한테는 솔직해질 수 있다.
‘솔직하다’, 정확한 뜻을 모르는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니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라고 한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말이다. 2월 중순이면 새내기 배움터를 하는데, 그때 동아리 홍보 공연을 준비 중이다. 춤 동아리에 속해 있는데 새터 공연이 이번 방학 때 포항에 남은 결정적 이유이다. 춤 동아리에서 가끔 프리스타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베틀), 내 차례가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민망함에 몸은 오그라들고, 결국 새로운 흑 역사를 만들어 내고 끝이 난다. 몸 자체가 춤추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순간순간 노래로부터 받은 나대로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솔직해지기가 어렵다. 누군가 나를 비웃을 것만 같아 겁이 난다. 자신감 있게 춤추고 싶다!
잘난척하는 것은 자신감이 많은 것과 다른 것 같다.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려 부자연스러운 노력, 남들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끔 하는 억지가 잘난 척이다. 자신감은 꾸밈없이 행동하며 진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오는 태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한 나에 대해 알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더 솔직해지기 위해서, 자신감 있기 위해서, 진실한 나를 알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다. 준비물은 시간뿐이다. 시간을 들여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 눈을 사용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떠오르는 감정, 생각 등을 가만히 지켜본다. 가끔 자거나 멍 때리는 것으로 오인당하기도 한다.
뭐든 관심을 가지면 애정이 생기기 마련.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알아 가다 보면 나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진짜 모습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둘러싼 방패막이 같은 이불을 한 겹 한 겹 벗어내면, 겨울 와중 따뜻하게 창문 통해 내리쬐는 햇빛을 볼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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