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고분자 동역학
생체고분자 동역학
  • 김원규 / 물리 박사
  • 승인 2012.09.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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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적 요동으로부터 야기되는 생체고분자의 자기조직화를 새롭게 규명

요동으로 가득한 생체계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 속은 다양한 요동(fluctuation)과 자극으로 충만해 있다. 그 안에는 DNA, RNA, 단백질 등의 생체고분자(biopolymer)들의 형태적 변화를 촉진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열적 요동과 더불어, 끊임없는 기작들로부터 발생하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 역학적 및 화학적 자극의 요동이 산재한다. 이러한 능곡지변의 환경 속에서 생체고분자들은 어떻게 정교하고 특화된 그들만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생체계의 요동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동이 생체고분자의 동역학, 특히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그 원리를 밝히기 위하여 생체고분자에서 일어날 수 있는 특수한 공명 현상, 확률적 공명(stochastic resonance)에 대한 물리학적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확률적 공명
1981년 Benzi와 공동연구자들은 빙하기의 주기적인 도래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지난 백만 년 동안의 지구의 빙하 부피 변화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빙하기는 평균 십만 년 주기로 반복적으로 도래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변화무쌍한 전 지구적인 기후의 요동 속에서 빙하기는 어떻게 이러한 결맞는(coherent) 주기적 반복을 할까? 흥미롭게도, 연구자들은 이 원인을 요동 그 자체, 그리고 행성운동에서 야기되는 중력의 섭동(perturbation)에 의한 십만 년 주기의 지구 공전 궤도 이심률(eccentricity) 변화에서 찾고자 했다. 이 이심률의 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미비하여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 양의 0.1% 정도이지만, 기후변화의 형태로 나타나는 최적화(optimized)된 크기의 요동의 도움으로 빙하기와 간빙기라는 두 가지의 상태(state) 사이의 막대한 에너지 장벽을 뛰어넘는 공명 형태의 전이(transition)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너무나 미약하여 들리지 않던 어떤 소리가, 오히려 특정한 양의(최적화된) 소음을 더함으로써 증폭되어 잘 들릴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다소 직관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이 개념이 확률적 공명의 핵심이고, 요동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요동과 관계되는 거시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대두됐던 확률적 공명은 이후, 단일 브라운 입자(single Brownian particle)의 비선형(non-linear) 중시계(mesoscopic system)에서 이론 및 실험적으로 입증되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링 레이저, 반도체 등의 물리적 계뿐만 아니라 신경 세포와 같은 생체계에서도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고정된 세기의 잡음(noise, 예를 들어 고정된 온도)에 의한 요동 하에서도 미약한 신호의 최적 주기에 의해 증폭되는 결맞는 반응(coherent response)이 일어남이 밝혀졌고, 이 또한 확률적 공명의 특성으로 설명되기에 이르렀다.

RNA 접힘 동역학(folding dynamics)에서의 확률적 공명
그렇다면, 생체고분자의 동역학과 확률적 공명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생체고분자는 다양한 외부 자극과 요동 속에 놓여있다. 예를 들어 상온의 물 속(열적 요동)에 담겨져 있는 RNA hairpin을 외부에서 장력으로 당기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RNA hairpin은 ~10 nm 수준의 길이를 가진 비교적 짧은 생체고분자로서, 외력이 없을 때 접힌 상태(folded state)의 삼차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RNA hairpin의 양 끝을 충분히 큰 크기의 장력으로 당기면, RNA는 그 접힌 상태의 구조가 뜯겨져 완전히 풀린 상태(unfolded state)의 일차원적 구조를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RNA hairpin의 동역학은 적당한 장력이 가해졌을 때 이 두 가지 상태에서 전이하는 쌍안정(bistable) 계로 표현될 수 있다. 이 생체고분자의 계에 미세한 주기적인 장력을 더 가한다면, 과연 특정한 주기에서 확률적 공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를 정량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포항공대 물리학과 통계 및 생물물리 연구실(지도교수 성우경)에서는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현창봉 교수와 공동으로 P5GA라는 RNA hairpin의 동역학이 진동하는 약한 장력에 의하여 어떻게 영향 받는가에 대하여 통계 및 전산 물리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여 연구하였다. P5GA는 22개의 뉴클레오타이드를 가진 약 10 nm 길이의 생체고분자이며, 이를 14.7 pN의 힘 이하로 당기면 접힘 상태가 우세하고, 그 이상으로 당기면 풀림 상태가 우세한 쌍안정 계이다. 우리는 17 pN의 강한 장력으로 늘어나 풀려 있는 P5GA가 다시 접힐 수 있는 확률이 0.5% 정도로 아주 낮음에도 불구하고, 진동하는 약한 장력을 더함으로써 그 진동수가 약 10 ms의 최적값을 가질 때 결맞고 주기적인 접힘이 일어남을 발견하였고, 이를 확률적 공명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이 연구는 2012년 8월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109, 14410-14415 에 게재됐다.

고분자의 특성으로부터 새로운 확률적 공명을 예측하다
DNA나 actin-filament와 같은 생체고분자들은 반유연(semi-flexible)하고 음전하를 띠고 있다. 이들 생체고분자에 장력 및 전기장 등의 외력을 작용하여 당기는 경우에는 RNA와는 다르게 하나의 특정 길이에서 평형상태를 갖는 단안정계(monostable)임이 알려져 있다. 이 경우에도 확률적 공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 계에 추가적으로 작용하는 주기적인 약한 장력(또는 전기장)이 확률적 공명 현상을 일으킴을 생체계 특징 중 하나인 유체역학적 상호작용을 포함한 통계물리를 통하여 규명했다. 우리는 DNA가 진동하는 약한 장력에 대하여 그 반응도가 최적 온도에서 최대화되는 확률적 공명을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actin-filament에 주기적인 약한 전기장이 작용하는 경우에도 확률적 공명이 일어나는 최적 온도가 존재함을 밝혔다. 특히, 생체고분자의 길이에 따라 최적화되는, 생체고분자의 특성으로부터 야기되는 새로운 형태의 확률적 공명을 발견했다. 이는 기존에 확률적 공명 현상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던 단입자계(single particle system)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고분자의 특성으로부터 야기되는 독특한 현상이다. 그리고 확률적 공명 현상이 유체역학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더 증진됨을 보임으로써, 생체고분자의 특유의 협동성의 효과를 설명했다. 더 나아가 선형 반응 이론(linear response theory)을 사용하여 이 생체고분자의 확률적 공명의 조건을 해석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이 연구는 2012년 8월에 Journal of Chemical Physics. 137, 074903에 게재됐다.
거시적인 주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됐던 확률적 공명이라는 개념은, 요동이 근간이 되는 여러 가지 규모의 물리 및 생체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물리 현상으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생체고분자의 동역학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예견된 확률적 공명에 대한 본 연구들은, 생체고분자가 요동이 충만한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여 자기조직화 하는가에 대한 생물 물리적 패러다임의 확립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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