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와 과학
대중매체와 과학
  • 이승훈 기자
  • 승인 2012.05.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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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는 '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가
영화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탄생한 매체이며, 동시에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매체의 특성 또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그리고 흑백에서 칼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영화는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최근 3D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과학기술로 인해 그 면모를 달리 해왔다. 동시에 영화는 대중매체 중에서 가장 시각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서 ‘과학기술’ 자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과학기술로 인해 탄생한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과학기술이 다뤄지는 방식은 아이러니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SF영화에서 과학기술의 산물과 그로 인한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된다. CF속에서는 과학기술이 인류의 편리한 생활을 보장하는, 즉 ‘테크노피아’가 묘사되지만, 영화 속에서의 미래는 고도로 문명화되어 인간의 삶이 제한되는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영화 속 미래사회에서 인간은 지배-피지배라는 두 계급으로 나뉘며, 과학기술은 지배계급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된 과학기술로 인한 인간의 멋지지 않은 미래, 조지 오웰의‘1984’에서 묘사된 극도로 감시화 된 체계 속의 인간처럼 과학기술로 인해 빅브라더와 같은 대중의 감시체계는 확대되고 또한 이 체계는 (첨단 군수기술로 무장된) 군사체계에 의해 굳건하게 유지된다. 또한 무분별한 과학발전으로 인한 환경오염(워터월드), 세계대전의 위협이나 그로 인한 인류의 멸망(터미네이터)등 현재의 작은 문제들과 우려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화되어 인간이 소외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미래, ‘디스토피아’가 영화가 담는 과학기술로 인한 미래이다. 즉, 많은 SF영화에서 이미 보여진 것처럼 과학발전으로 인해 과학이라는 ‘도구’가 인간이라는 ‘주체’를 넘어 역전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현재 대중들의 두려움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특이한 점은 현재의 인류가 과학기술로 인해 굉장히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는 두려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학’에 대한 두려움은 다시 ‘과학적인 것보다 전통적인 가치가 우월하다’와 ‘과학기술의 쓸모없음 혹은 해악성’으로 영화 속에서 다시 표현된다. 이는 영화 ‘아바타’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먼 행성 ‘판도라’로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 속에서 과학기술의 산물, ‘로봇’들은 판도라의 ‘나비(Navi)족’들에게 너무 쉽게 패배한다. 이 때, 나비족들이 사용하는 무기라는 것은‘활’과 같은 전통적인 것에 불과하다. ‘판도라’라는 미지의 행성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전통적인 가치로 치환되고 인간은 그리고 과학기술은 이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상징화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도 고도로 문명화된 기술과 기계들이 넘쳐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모두 오작동을 일으키고 반대로 포스(force)라는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것이 가장 믿을만 한 것으로 묘사된다. 철저하게 논리적인 ‘과학’이 가장 논리적이지 못한 것들에 의해 붕괴되는 현상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대중매체에서 표현하는 과학기술의 산물과 그로 인한 미래가 이처럼 디스토피아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과학기술자’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스펜서 위어트(Spencer Weart)가 ‘미친 과학자로서의 물리학자’라는 논문에서 언급했듯이, 기존의 ‘연금술사’나 ‘마법사’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과학자’에게 그대로 연결되어 일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사악하고 신비스러운 힘이나 금기되는 지식을 연구하는 인물로 표현되거나 ‘과학기술’의 힘이 커지면서 과학자의 지위는 상승하여 사회를 통솔하는 독재자로 표현된다. 또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서는 과학기술자가 사회에는 관심이 없는 nerd,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아닌 사회와 격리된 존재들로 희화화되어 묘사된다. 과학자를 사회 혹은 대중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 그리고 마치 다른 ‘종’인 것처럼 희화화시키는 것, 이 둘 사이에 과학자의 이미지는 자리한다.
사실 이런 방식이 과학과 과학자를 묘사하는 절대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20세기 전반기의 대다수의 작품에서는 과학자들을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숭고한 천재들로 그려져 있으며, 과학 또한 인류를 편리하게 할 것이라는 ‘테크노피아’적인 시각에서 표현되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발발과 체르노빌 폭발 등으로 과학기술의 위험성이 대중들에게 인식된 이후로, 디스토피아적인 시각이 대중들의 인식에 자리 잡혔다. 이 시각의 차이는 나라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취하기도 하는데, 1998년의 드라마 ‘카이스트’의 경우를 보면 드라마 안에서 묘사되는 과학도들의 모습은 ‘빅뱅이론’에서 다루어지는 과학도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인 이공계 기피현상과도 이어지며, 그 당시에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 과학기술이 더 발전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국내에 퍼져있었고, 어느 정도 발전된 현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필요성이 예전에 비해 많이 평가 절하때문이다. 이는 유럽, 미국에서 이공계기피가 보편적이고, 현재 발전중인 인도, 중국에서 이공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과학기술이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라는 분위기에 따른 국가 간의 차이로 볼 수 있다.
혹자는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과학의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기원을 인문학과 자연과학, 두 문화의 대립으로부터 찾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기존의 엘리트 집단이었던 인문학자들의 위치가 위협을 받게 되자, 문화콘텐츠의 주 생산자인 이들 인문학자들이 과학기술에 적대적인 이미지를 쏟아내었다는 주장인데, 이는 이 두 역학적 관계에서 ‘대중’이 소외되어 있는 절대적인 한계점을 지닌다.
과학은 처음 등장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오랫동안 발전해왔다. 과학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과학의 특이성과 고유의 어려움 때문에 대중은 과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왔으며, 대중은 과학이 만들어준 현 시대의 풍요로움 때문에 가진 ‘테크노피아’적인 시각과 무지로 인한 공포에서 비롯된 ‘디스토피아’적인 시각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학자들 또한 대중이 과학기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마치 ‘그들만의 리그’처럼 변질되어 왔다.
앞서 열거된 대중 매체 속 과학자들의 이미지가 얼마나 실제 과학자의 모습과 비슷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만들어진 과학자의 이미지에 갇혀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주는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의 사회적 영향력,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과학자의 꿈을 꿨고 현재 과학자가 된 것처럼, 이제는 과학자들이 대중이 과학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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