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비례대표제
청년비례대표제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2.04.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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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청년들의 바람 이룰까

청년비례대표제, 무엇인가
십 년 전, 만 19세의 나이로 독일 녹색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되어 세계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안나 뤼어만’의 사례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독일에서는 안나 뤼어만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정치인들이 정당이나 국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역대 20대 국회의원이 단 두 명뿐일 정도로 정치계는 기성세대의 영역으로 여겨 왔고, 젊은 세대들은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과 무관심을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정치에 무관심했던 2030세대들이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고,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에서 활발한 목소리를 내며 투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계에서도 청년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각 당에서도 ‘청년 창업 활성화’, ‘반값등록금 시행’, ‘청년고용의무할당제’ 등 청년 세대를 위한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더 나아가, 헌정 사상 최초로 일부 정당에서는 20, 30대 젊은 청년을 비례대표로 공천하여 국회에 입성시키는 ‘청년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청년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청년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각각 ‘락파티’와 ‘위대한 진출’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지난 1, 2월 중에 만 25세~만 35세의 국민을 대상으로 청년비례대표를 모집했다. 청년비례대표 선발은 처음으로 시도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슈퍼스타 K’, ‘나는 가수다’ 등의 경연 방식을 적용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락파티’의 경우 청년비례대표제 참가자를 대상으로 홍대 클럽에서 개회식 행사를 진행하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민주통합당은 372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심사, 심층면접, 청년정치캠프 등을 거쳐 16명으로 최종 후보를 압축했고, 청년 선거인단의 선거 결과를 통해 20, 30대 남, 여 청년비례대표로 각각 안상현(29, 남)ㆍ정은혜(29, 여)ㆍ김광진(31, 남)ㆍ장하나(35, 여) 씨를 선출했다. 이 중 최고 득표를 얻은 김광진 후보를 당 내부 청년대표 최고위원으로 임명했다. 비례대표 후보로는 김광진 10번, 장하나 13번, 정은혜 27번, 안상현 28번에 배치했다.
통합진보당의 ‘위대한 진출’은 서류심사로 49명의 지원자에서 20명을 선출, 2차 심사에서는 PT 발표 등을 기준으로 후보평가단 현장 투표를 통해 5명의 최종후보를 선정했다. ‘BIG 5’에는 ‘고대녀’ 김지윤 씨와 청년유니온 출신 조성주 씨 등의 후보가 올랐다. 청년 선거인단의 투표결과 46.46%의 득표를 얻은 김재연(31, 여) 전 반값등록금 국민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 청년비례대표로 확정됐고, 당 비례대표 3번으로 배정받았다.
하지만 두 정당의 청년비례대표 선출 프로그램은 예상보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락파티’는 지원자가 애초 생각보다 부족하자 기존 지원기간을 3월 16일에서 28일로 연장했고, 접수마감 하루 전날까지 지원자가 100명도 되지 않아 당 내부에서 2차 접수를 추진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기도 했다. 또한, ‘락파티’와 ‘위대한 진출’은 약 3주 동안 만 19세~만 35세 국민을 대상으로 청년 선거인단을 모집하였는데 각각 1만 7088명, 4만 8386명을 확보했다. 실제로 투표한 선거인 수는 각각 8510명, 1만 9756명으로, 실제 선거인단으로 등록 가능한 유권층이 천만 명이 넘는다고 보았을 때 청년들의 관심은 적었다.
민주통합당은 청년비례대표 4명을 모두 당선 안정권으로 배정할 것처럼 홍보했으나, 흥행 실패와 함께 20명 안팎의 비례대표를 배출할 수 있는 정당지지도에 비해 청년비례대표 4명은 너무 많다는 의견이 우세해 2명을 당선 안정권, 2명을 당선 가능권으로 배정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락파티’와 ‘위대한 진출’의 선발 과정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락파티’ 1차 탈락자 성상훈(35) 씨 외 4명은 선출과정의 절차문제와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지만, 정당의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실제로 구체적인 심사평가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당선 결과를 보더라도 4명 중 2명이 민주통합당 및 관련기관 출신이다. ‘위대한 진출’의 온라인 투표 기간에 컴퓨터 서버의 접속기록과 소스코드가 변경된 사실이 확인되 각종 언론에서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자 통합진보당은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다”라며 총선 이후에 정확한 진상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년비례대표, 의의와 영향은?
사실 지금까지 국회에 20, 30대의 젊은 의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386세대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여, 16대 국회에서는 14명, 17대 국회에서는 23명의 30대 국회의원이 활동했다. 그러나 이들이 청년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었으며, 당 차원에서 일종의 ‘젊은 피 수혈’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청년비례대표는 정당을 뛰어넘어 청년들의 투표로 뽑힌 일종의 ‘청년들의 대표’라는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등록금 문제, 주거 문제, 일자리 문제, 군대 문제 등 청년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국회의원인 것이다.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안상현 씨는 3월 18일 <대학언론인과 청년비례대표의 대화> 간담회에서 “어떤 문제든지 어느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지는데, 청년비례대표는 여러 사안을 청년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또한, 한국에서 정치인들은 사회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국회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제도는 오바마나 힐러리처럼 어렸을 때부터 정치체계를 닦아오는 정치인 배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김광진 씨도 3월 20일 <MBC 100분 토론>에서 “청년비례대표자들은 자발적으로 지원했고, 35세 이하 청년들의 투표 결과로서만 선정됐다. 따라서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특정 계파나 조직에 제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청년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청년비례대표에 대한 우려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치 경험과 더불어 정책과 재원 문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 등이 지적되고 있고, 청년대표 몇몇이 국회에 들어가 어떤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 등이 있다. 또한, 청년비례대표제 도입이 2030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이벤트 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청년비례대표의 한계점과 제도의 의도야 어찌 됐던 청년 정치인의 국회 진출 성사와 청년들을 위한 정책 실험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여성비례대표 50% 할당제’와 ‘여성의무공천제’와 같은 여성할당제가 등장하여 여성 정치시대가 열렸었다면, 지금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을 위한 청년 정치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물론, 현재의 청년비례대표가 기존 정치판에서 4년간 무엇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른 객관적 평가가 청년비례대표제의 귀추를 좌우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청년들이 정치에 대해기성세대만큼의 관심과 참여의식을 가진다면, 단순히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나오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민주적인 사회, 건설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