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커뮤니티 사이트
연재 커뮤니티 사이트
  • 김성환 / 인문 대우전임교수
  • 승인 2012.03.21 2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통하는 대중 문학, 연재 커뮤니티 사이트

문학 공간으로서의 인터넷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문학 창작도 진입장벽은 높다. 수많은 문학청년이 작가를 꿈꾸지만 등단과정을 통과하는 수는 얼마 되지 않으며, 독자의 기억에 남는 작가는 더욱 드물다. 문학의 종언을 공공연히 선언하는 상황이지만, 작가가 되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항상 작가에 비해 지면은 부족하다. 지면이 무한정 늘어난다면 작가를 향한 열망은 사그라질까. 물론 그럴 리야 없다. 대신 인터넷이 이 갈증을 조금이라도 씻어줄 것으로 주목받았다. 더불어 인터넷이 단순한 지면 이상의 문학 공간이 되리라는 기대도 함께 떠올랐다. 
인터넷이 주목받은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의 경우에 매체는 물리적인 공간 이상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근대 소설의 역사에서 신문, 잡지 등의 매체는 소설 성립의 전제였기 때문이다. 한 지면에서 소설과 저널리즘 기사(journalistic writing)는 독자를 두고 경쟁한 읽을거리였다. 그리고 두 장르의 글쓰기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중적인 읽을거리로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대중소설이라는 모호한 대상은 선험적인 규정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20세기 초의 문학사에서 작품과 매체를 대중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 짓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순수소설이든 대중소설이든 대중적 매체의 영향 하에서 쓰이고 읽혔으며 그 관계가 문학사를 채웠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국 문학사에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이분법이 엄존한다. 문학은 ‘문사철(文史哲)’의 전통 하에 사상을 담지한 고귀한 인식체계로 인정받는다. 여타의 예술장르가 폄하 받은 것에 비하면 문학은 좀 더 특권적인 것 같다. 이 때문에 다수의 작품은 문학에 미달하는 존재, 즉 대중문학이라는 용어로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이러한 이분법은 우선적으로 매체에 대한 선입견에 의해 작용하는 듯하다. 이름 있는 문학가들이 중심이 된 문예지를 제외한 다수의 신문, 대중 잡지, 그리고 덜 유명한 출판사의 작품은 대중문학이라는 혐의를 받는다. 그리고 문학계의 철저한 무관심이 혐의를 입증한다. 
인터넷은 이런 상황을 변화시킬 주역으로 지목됐다. 매체의 혁신적인 변화는 곧 문학성 자체에 변화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인터넷 공간은 ??퇴마록??이 연재되던 초창기와 비교해도 놀랍도록 거대해졌다. 인터넷의 확장성과 개방성은 이분법을 허물 수 있는 제도 같아 보인다. 기성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들은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통신문학과 하이퍼링크 소설의 실험을 거쳐 현재 인터넷 소설은 다음 몇 가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작가와 독자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유명 작품에는 인기에 걸맞은 댓글들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작가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더라도, 독자와의 소통은 창작 과정에서 생산적인 체험이 되고 있음을 작가후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아마추어 작가에게도 창작의 공간이 개방됐다. 최소한의 로그인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작가로서 자신의 연재를 이어나갈 수 있다. 실력 여하에 따라 기성 작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정식 출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편집권이 절대적이었던 인쇄 매체에 비하면 이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셋째, 공간의 확장이 장르의 분화로 이어졌다. 인터넷 공간이라고 무한정 확산적일 수는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들은 장르별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그 후로는 장르의 규범들이 더욱 선명해진다. SF, 무협,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은 모여 있음으로써 정체성이 강화된 것이다.
과거의 인쇄 매체와 비교하자면 인터넷 매체는 기존의 문학제도들을 완전히 전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화된 외형이 곧바로 질적 변화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인터넷 공간이 대중성과 예술성의 이분법을 허물었는지에 대한 대답은 다소 회의적이다. 예술성을 인정받는 작가의 활동공간은 이전의 이분법만큼이나 선명하게 분리되어 있다. 여타의 대중소설의 소외도 여전하다.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서점의 콘텐츠는 유명작가의 명성에 기댄 편집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나머지 작품은 포털의 일부만 차지하거나 연재 전문 사이트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다. 분리된 공간에서 대중소설들 역시 아쉬운 점이 있다.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장르 관습에서 벗어난 진화의 흔적은 매우 드문 편이기 때문이다. 엇비슷한 작품들만 양산되는 상황이라면 인터넷의 특징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요컨대 인터넷이라는 매력적인 매체를 두고서도 문학 내부의 질적인 변화는 그만큼 극적이지 않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학의 본질을 되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 소설의 경우, 최근의 뉴웨이브문학상과 같은 기획은 서사, 즉 이야기성에 기대고 있다. 결국 이야기라는 소설의 본질이 새로운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성에 충실할 수 있어야만 소설은 만화, 영화, 게임과 같은 인접한 서사장르와도 교섭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설은 영화나 게임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문학공간으로 주목하는 이유는 놀랄만한 파격을 원해서가 아니다. 다만 인터넷이 자유롭게 작품을 쓰고, 읽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가장 문학적이지 않은가.
인터넷 문학의 양적인 확대는 필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수동적인 결과이다. 그 미래가 무엇이든, 질적인 변화는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인터넷이 미래지향적인 매체로 제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문학의 본질을 묻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 외 기술적인 부분은 부차적인 질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