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글도 잘 쓰는 이공계’를 원한다
세상은 ‘글도 잘 쓰는 이공계’를 원한다
  • 김정명 / 삼성코닝정밀소재 부장 萬事書通 연구소장
  • 승인 2012.03.0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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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직장에서 중요한 소통 역할을 담당 이공계도 글쓰기를 필수로서 여기고 배워야

이공계는 글쓰기를 도외시하면 안 된다. 글쓰기와 이공계는 늘 쌍둥이이다. 서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는 한 몸통이다. 둘은 같이 붙어 다니지만 그리 친하지 않다. 이공계는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글쓰기는 이공계를 옥죈다. 세상마저 이공계의 글쓰기를 ‘부적절한 외도’로 몰아세운다. 외도란 표현에는 ‘이공계는 본연의 임무인 연구개발에만 충실하면 되지, 글재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는 듯하다.
과연 글쓰기는 이공계를 짓누르는 돌덩이이고 이공계 본분을 넘어서는 잔재주에 불과한 것인가? 단연코 그건 아니다. 글쓰기는 이공계의 미래에 도움을 줄망정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이공계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밝혀 주는 고마운 등불이다. 서로 반목하면서도 어깨동무로 함께 길을 나서야 하는 ‘얄미운 단짝’ 같은 존재이다.
직장에서 이공계가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의사소통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직장은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곳이라서 소통의 능력은 직장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영역은 글쓰기와 말하기이다.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직장 내 소통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조직에서 승진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글쓰기 능력은 더욱 많이 요구된다. 조직 리더, 단체 수장, 사회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글쓰기 능력이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글쓰기 교육프로그램 책임자인 제임스 패러디스 교수는 “MIT 학생은 대부분 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것이며, 리더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리더에게는 글쓰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라고 역설한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고급 인력일수록 글쓰기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뛰어난 글쓰기 능력을 발휘한다. 미국 직장의 경우, 중간 관리자는 업무시간의 40%, 매니저는 50%를 글쓰기와 관련된 일로 보낸다고 한다. 또한, 기업 채용에 있어서도 글쓰기 능력은 리쿠르트 기준 최상위에 자리매김 되기도 한다. 대입 전형 역시 지원자 전원에게 에세이를 요구하며 글쓰기 능력을 테스트한다. 이쯤 되면 글쓰기 능력은 곧 신분 상승의 동아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이공계 출신은 글쓰기가 무엇보다 ‘죽을 맛’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조직적으로 구성하는 능력과 문장력이 부족하니 글쓰기가 소태맛일 수밖에. 하지만 우리나라도 조만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글쓰기는 한층 더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다. 글쓰기가 죽을 맛인 사람들에게는 참 딱한 일이다.
세상은 멀티형 인재를 원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다재다능한 맥가이버 형 이공계를 찾고 있다. 계산과 공식에만 빠삭한 이공계보다 ‘인문학을 아는 엔지니어’, ‘주위와 소통하는 과학자’, 그래서 ‘글도 잘 쓰는 자연과학도’를 바라고 있다. 이공계가 글쓰기를 외면하면 후퇴와 몰락만 남는다. 결국, 이공계 인재도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공계도 ‘죽을 맛’보다는 글쓰기의 ‘죽이는 맛’을 진정 음미할 수 있게 된다.
글쓰기는 전공과 재능, 기질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이공계라서 글쓰기가 어렵다고 체념해 버리면 그것은 ‘전공의 이유’가 아닌 ‘능력의 차이’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돼 버린다. 바야흐로 만사서통(萬事書通, 모든 일은 글쓰기로 통한다)’의 시대! 배울 수 있을 때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익혀 두시기를 포스테키안에게 당부 드린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 석양 아래 이고 진 저 늙은이처럼 힘들고 서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