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쌍방향 소통과 인문학
[노벨동산] 쌍방향 소통과 인문학
  • 김춘식 / 인문사회 대우조교수
  • 승인 2011.06.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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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향 소통환경 조성이 중요
사람ㆍ공동체의 가치와 희망 확인해야

 2006년 이래 6년째 포스텍에서 세미나식 역사강좌를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시간적인 제약과 수강자 개인이 설정한 목표와 의지에 따른 편차에도 불구하고, 매 학기 참가자 개인이 자유롭게 선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쌍방향의 소통은 필자에게 큰 기쁨이다. 첫 번째 기쁨은 필자와 수강자들의 자유롭고도 인격적인 만남이며, 역사적인 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를 ‘나’와 ‘공동체’의 소통관계로 환원할 수 있다는 점이 그 두 번째 기쁨이다.

 하지만 이 소통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발표자는 담당교수와 평균 5시간 정도의 개별상담을 거치며, 발표 및 토론의 진행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또한 주제마다 문제제기를 포함한 20쪽 정도의 발표문과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해야 한다. 게다가 발표문에는 반드시 역사의 현재화 작업, 즉 ‘현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야 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에는 사실(fact)에 대한 지식과 재현(再現)을 넘어 해석과 평가가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과거에 대한 지식을 현재의 나와 나를 둘러싼 공동사회가 당면한 문제의식으로 치환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꼭 역사적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시간과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과 공동체의 가치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강좌는 사건에 대한 해석과 평가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강좌를 포함한 인문학 강좌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전자는 주로 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이며, 후자는 사회적 삶의 실천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스스로를 탈바꿈하고 사회적 삶에 대한 실천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삶의 가치이자 희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사람’인 내가 사회적 실천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까?

 첫째로 현상에 대해서 늘 회의(懷疑)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심해 보는 것은 비판적 사고와 대안을 찾는 인식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용’중심적 사고와 ‘관계’중심적 사고를 병행하는 사유(思惟)가 중요하다. 내용을 중시하는 태도는 개인의 이론적 지식능력을 탄탄하게 하는 것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는 사회적 배려에 해당하는 실천적 지혜,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선한 것을 목표로 행동하는 프로네시스(phronesis)를 체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대학공간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실천적 지혜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대학은 자유로운 사유와 토론을 정점으로 형성된 학문공간이며, 일반적으로 대학 이전에 경험하는 학습공간과는 차이가 있다. 자유로운 사유와 토론이 가능하려면 강의실 내에서 쌍방향의 소통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참여주체들의 심리적 간극을 좁히고 물리적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선 학문공간에서는 상호 자유롭고도 인격적인 정중한 만남과 상호 동료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상호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수평적인 관계는 진지하고도 자유로운 소통의 전제이자, 심리적 간극을 좁히는 지름길이다.

 두 번째로 물리적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텍 학생들의 일상공간은 강의실, 실험실, 도서관, 숙소 등 대부분 사각형이다. 필자는 창의적인 사유와 자유로운 소통에 긍정적인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교내 잔디밭에서 야외수업을 시도하고 있다. 정형적인 실내공간에서 벗어나 개방된 자연공간으로의 부분적인 변화에 대한 수강자들의 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장비나 도구 등이 필수적인 전공 등에서는 제한적이겠지만,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한 학기에 서너 번 정도 야외수업을 통해 물리적 간극을 좁힐 수 있도록 대학의 수려한 초원에 원형벤치를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윤대현 교수는 최근 국내 모 대학의 학생들이 생명을 놓아버리는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철학과 인문학의 결핍을 지적하고, “젊은이들이 외부의 과도한 압박에 직면하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초중고 때부터 특정분야에 집중하는 교육과정이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인문학적인 사유기회를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가치가 전제된 ‘희망’이 인문학의 영역에서 보다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나치독일에 항거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빈민구호공동체인 엠마우스(Emmaus)를 설립해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프랑스의 피에르(Abbe Pierre) 신부는 “자신의 삶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 신념이 희망이며, 타인과 함께 할 것인가, 혼자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야말로 삶의 실체를 결정짓는 근본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공간에서 쌍방향의 소통을 이루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가치와 희망을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