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기술문명과 삶의 길 사이
[독자논단] 기술문명과 삶의 길 사이
  • 주민호 / 산경 05
  • 승인 2011.05.1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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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책을 한 권 구입했다. 로버트 M.피어시그가 쓴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로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짬이 나는 대로 틈틈이 읽고는 있지만, 800페이지가 되는 분량은 모두 읽기에 꽤 시일이 걸릴 듯하다. ‘삶에 대한 흥미롭고 지혜로운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하는 이 책은 작중 화자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미국 중서부지역을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며 얻는 경험과 사색의 과정을 담고 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이 여행 중의 일어나는 일보다는 화자의 잃어버린 과거와 철학적 숙고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 하여도 좋고, 하나의 수필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저자의 이력에 먼저 관심이 갔다. 그는 아이큐가 170이 되는 수재였고 화학분야에서 재능을 보였으나 궁극적 의미를 찾는 데 실패하고 학업을 중단한다. 이후 군에 입대하여 한국에서 근무했으며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제대 후엔 미네소타 대학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인도로 가서 동양철학을 공부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자유계약 작가로 활동한다. 그러다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겪으며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전기 충격 치료를 받는다. 이후 ‘정신적 삶과 기술 공학적 삶 사이의 분열’을 모토로 아들 크리스와 함께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나고 이 책을 쓰게 된다.

 순전히 이 책을 사게 된 건, 지은이의 약력에 쓰여 있는 다분히 간단한 삶의 이력에서 나와 겹치는 어떤 공통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배우고 있는 것들과 가치에 대한 회의, 그와 비슷한 고민을 나도 분명히 하지 않았었나. 포스텍에 입학한 뒤로 나의 자아는 합리성과 생(生)의 불가해 사이를 헤맸고, 분열되어버린 채로 지식을 얻는 일에 소홀하던 때가 있었다. 나의 탐구심은 학위나 어떤 학문적인 성취에 있는 게 아니라 객관성의 칼날로는 도려낼 수 없는 참된 진리에 대한 갈증에서 연유하고 있었다. 지식에 대한 회의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한 번 뿐인 삶이라면 스스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나의 탐구는 ‘쓸모없음’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가치, 예를 들면 예술가들의 합리성을 벗어난 광기나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정량화시킬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과연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대학 졸업장을 받고, 잘 알려진 기업에 취직하고, 보다 넓은 집과 보다 좋은 차를 갖고서 ‘성공했다’고 평판을 받는 세상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자 반발심이었다. 또한, 그것은 살아있다면 마땅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변론이었다. 그리고 이제껏 내버려 두었던 내 자아에 대한 보상이었다.

 ‘모터사이클 관리술’로 대변되는 합리적 이성과, ‘선(禪)’으로 대변되는, 아무런 목적 없이 존재할 뿐인 인간 존재, 책은 어떻게 이 둘의 타협점을 찾아 나설 것인가. 우리가 어느 목적지에 좀 더 빠르고, 좀 더 편히 다다르기 위해서는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목적지에 이르고 난 이후에는 그러한 수단과 방법은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다. 우리가 끙끙대며 얻으려는 지식, 또는 부와 명예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모터사이클 관리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목적을 성취하는 순간, 즉시 잊어버리게 될 종류일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기를 소홀히 하던 내게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무감각해져 버린 일상에서 혹시 빠뜨리고 가는 게 없는지를 내게 일깨우고 있다. 포스테키안들은 평상 바쁘다. 마음에 바늘 하나 꽂아 들어갈 여유가 없다. 그게 혹 쓸데없는 바쁨이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자.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학점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혹시 지금 장기적으로 보아서 비효율적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묻자. 살아가고 있음을, 정말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주체가 되자. 시험지에 정답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삶의 정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다. 그리하면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고달프지 않을 것이다. 늘 자신의 내면에 길을 밝혀 줄 나침반을 지니고 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