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골목소리] 한 끼 식사로 11만 원을 지출?
[지곡골목소리] 한 끼 식사로 11만 원을 지출?
  • 장민재 / 화공 07
  • 승인 2011.04.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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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지출의 일률적 적용은 공정하지 못해
행사 본연의 의미 퇴색되지 않는 새 대안 모색

 지난 두 주간 이름하여 ‘선배 공양의 날’ 행사를 여기저기서 참 많이들 했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다소 과장된 뜻을 가진 단어를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공양’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어휘는 웃어른께 음식을 드린다는 뜻과 부처에게 음식을 바친다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사실 어느 뜻에도 우리 선배들은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포스텍의 모든 구성원들은 주거환경이 동일하고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이로 인해 생긴 특별한 문화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일명 ‘선배들의 후배 챙기기‘로서 갓 입학한 신입생들 다수를 대상으로 끼니를 사주거나 혹은 매점에서 후식을 사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문화로 고착되면서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나오는 베풂이어야 할 것이, 선배가 원하지 않더라도 의례 마땅히 사주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바뀌었고 이로 인해 학기 초에 많은 지출을 감내해야 하는 선배들의 불만도 쌓였다. 이것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자 선배공양의 날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 제도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선배 공양의 날’ 행사를 보면 고깃집에서 1학년부터 4학년을 아우르는 분반 구성원들이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정도의 의미였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평소에 밥을 얻어먹은 후배들이 식사를 베풀었던 선배들에게 밥을 사는 본연의 훈훈한 의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레스토랑은 해가 거듭할수록 고급스럽고 비싼 곳으로 바뀌었고, 평소 보기 힘든 선배들과 후배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순기능은 외면당한 채 선배는 선배끼리 후배는 후배끼리 먹기도 한다. 일부 선배들은 이 날을 공짜로 밥을 먹는 자리로 인식하여 평소 후배를 챙기지 않던 이들도 모두 등장하여 밥만 먹고 사라지기도 하며, 후배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이 과도한 지출이 스스로에게 합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만 기라성 같은 다수의 선배 앞에서 그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선배 공양의 날’이라는 제도가 지금과 같이 고착화 되는 것은 분명히 올바르지 못하다. 지난주 일부 분반은 식사 장소를 포항시내의 초고가 레스토랑으로 선정했고, 그에 따라 신입생들이 한 끼 식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11만 원을 초과하였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3,6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평균 ‘대학생 한 달 생활비’ 42만 원의 25%에 육박하는 액수다. 과연 신입생들이 단 한 끼 식사에 그 비용을 지불할 의무가 있는가?

 현재와 같은 ‘선배공양의 날’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 제시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신입생들이 5만 원을 내던, 10만 원을 내던 선배들이 후배들을 사주느라 지출하는 금액은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결함은 공평성의 결여다. 일부 선배들은 많은 후배들을 챙겨주고, 밥을 사주는 것을 즐긴다. 일부 선배들은 그렇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에 집중한다. 일부 성격 밝은 후배들은 많은 선배들과 안면을 익히며 식사자리를 갖는다. 성격이 조용한 후배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더 많은 선배들이 밥을 사준다. 일반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불특정다수의 선배들이 1학년 남학생들을 1학년 여학생들보다 더 많이 챙기는가? 그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부 선배들이 일부 후배들에게 열심히 밥을 사주었으니, 이제 모든 후배들은 모든 선배들에게 좋은 밥을 대접하라’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처사다. 학생들마다 다른 성격곂??성별에 의한 큰 편차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1학년 구성원들이 그들의 선배를 대접할 돈을 일괄적으로 내놓을 의무가 그들에게는 없다.

 찬성하는 입장이 제시하는 두 번째 근거는 장기적인 관점에 기반한다. ‘1학년 때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매년 한 번씩 그와 같은 날이 있을 것이고, 내년부터는 ‘공양’ 받는 입장일 것이므로 4년 치 식사비용을 한 번에 내는 것으로 생각하라’ 는 것인데, 이것은 언뜻 들으면 일리가 있는 말 같다. 그러나 이 역시 특정 다수그룹의 의견일 뿐이다. 1학년들은 학기 초에 돈이 들어갈 곳이 많다. 10만 원을 훨씬 상회하는 학회비가 있고, 23학점을 채워줄 교재비, 대학생이 되어 새로 장만하는 옷과 신발 등 한 달 지출액은 아주 크다. 모든 학우들이 그 부담을 너끈히 감당해내는 것은 아니다. 아직 신입생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쉽게 내는 10만 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학기 내내 만져보지 못하는 여윳돈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러분 주변에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이를 악물고 생활하는 학우들이 있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그리고 학업에 대한 그들의 의지는 뚜렷하고 강하다. 그들이 생활전반에 걸쳐 지출내역을 최소화시켜가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에게 ‘당신이 4년 동안 먹을 뷔페 값을 당장 일시불로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당신에게는 없다. 그 돈은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며, 무엇보다 당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선배를 ‘공양’한다는 다소 우스운 제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이러한 제도가 처음 발생하게 된 배경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본연의 의미를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다. 앞으로는 분반 구성원들끼리 투표를 하여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배에게 밥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선배들의 의지가 개입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음식점 선정이나 회비 액수도 민주적인 방법을 거쳐 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챙겨주는 선배에게 감사한다는 그 자리 본연의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공양’이라는 단어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 신입생들보다 서너 살 많은 필자가 신입생들의 웃어른이라니, 생각만 해도 민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