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세계대학평가 28위와 우리의 모습
[독자논단] 세계대학평가 28위와 우리의 모습
  • 박진영 / 기계 08
  • 승인 2010.11.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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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업적에 무임승차한 느낌
위대한 꿈을 꾸는 포스테키안이 되자

 지난 9월 16일 새 학기의 분주함과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쁜 소식이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 더타임즈에서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포스텍이 28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어느 평가기관의 세계대학평가 순위를 통틀어도 한국의 대학이 세계 30위권 안에 들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덧붙여 이번 평가는 세계적인 연구평가기관에서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더타임즈는 포스텍이 진정한 세계적 수준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비전 2020의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던 요즘, 가장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총장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고, 교수들도 수업시간에 한 번씩은 이 뉴스를 화제로 삼았다. 학교에는 애드벌룬이 뜨고 최근에 설치된 전자 게시판은 “세계 28위”라는 문구를 당당히 비추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 학생들은 여기에 크게 기뻐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최근 몇 년간 양적인 평가와 의문스런 지표로 얼룩진 국내 대학평가에서 1위를 KAIST와 SNU에게 내주었던 탓일까? 그래도 이번 평가에서 KAIST와 SNU를 각각 79위와 109위로 따돌렸는데 학생끼리 있을 때 대학평가 결과가 화제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한 교수님께서 강연에 앞서 학생들에게 세계 28위를 한 것이 자랑스럽지 않느냐고 물어보셨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거나 호응하는 학생도 거의 없었다. 재차 물어보셔도 학생들이 시큰둥해 하자 강연을 하러 오신 분께서 약간 민망해 하실 정도였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 놀라운 성과에 학교에 대한 자부심은 들었으나 크게 기쁘지는 않았다.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나 스스로도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세계 28위라는 놀라운 결과 앞에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을까? 왜 이 결과에 어리둥절해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직 우리 학생 스스로가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기숙사 휴게실과 캠퍼스에서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2륜차 헬멧쓰기 캠페인을 하는 경비원이 안내를 하려고 불러도 본체만체 지나쳐 버린다. 불이 꺼지지 않는 기숙사에서는 숙제를 베끼는 학생들의 볼펜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술에 취해 고성방가 하는 학생들과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온다.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렇게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들보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학점과 장학금으로 대표되는 단기적인 과제에 매몰되어 훗날의 위대한 꿈을 꾸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세계 28위라는 말을 듣고도 어리둥절했던 건 아마도 아직 우리 스스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마치 무임승차한 느낌처럼 말이다. 세계 28위의 쾌거를 이룬 지금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부분부터 포스테키안의 정체성을 갖고 진정한 월드 클래스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기보다 자긍심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