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오름돌] 어린이 포스테키안
[78오름돌] 어린이 포스테키안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0.09.01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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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사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종종 다급한 목소리로 자녀를 찾아달라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게 된다. 휴대전화를 받지 않아 자녀와 직접 연락할 방법이 없는 부모님들께서 급한 대로 집으로 배달된 신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아들을 찾아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학생의 어머니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잃어버린 아들의 안녕과 다가올 신체검사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당신들의 눈에는 어린 아이일 뿐인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은 어느 부모님이나 같을 것이다.

  기숙사 입사 기간 포스텍의 교정은 아직 부모님의 걱정 아래에 있는 포스테키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기숙사 입사 기간의 포스텍은 짐 운반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오신 부모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개중에는 차로 몇 시간 걸리는 거리를 기꺼이 달려 온 부모님도 있다. “너는 공부만 하면 돼” 라는 환경에서 곱게 자란 자녀들이 과연 ‘짐 정리는 잘할 수 있을지’, ‘무거운 것은 옮길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일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자녀와 이를 뒷받침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주머니에 담긴 새끼처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캥거루족”, 단단한 부모의 보호막 속으로 숨어버린다는 “자라족”, 자녀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챙겨 주는 “헬리콥터 부모”. 이는 의존적인 자녀와 그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는 부모를 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 중 일부일 뿐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이러한 관계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관계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모 포털 사이트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대학생 10명 중 6명 이상이 스스로 ‘마마보이’, ‘파파걸’의 기질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난처한 일이 생기면 먼저 부모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부모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작용 한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대학생 절반 이상이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문 결과 이는 스스로 일을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부모에게 의존적이라고 밝힌 학생 절반 이상이 그 원인의 화살을 부모에게도 돌렸기 때문이다. 설문을 인용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사사건건 관여하며 영향력을 행사 한다’, ‘어느 정도 헬리콥터족 기질이 있다’고 한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힘든 일을 대신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의존적인 자녀를 만드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의존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녀의 실수와 고생스러움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모든 일을 대신해 주고자하는 부모와 이를 당연히 생각하고 이에 익숙해지는 자녀 간에는 사랑이 아닌 의존이 쌓인다. 진정한 사랑은 실수를 통해서 커가는 자녀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여 부모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주는 관계에서 자라게 된다. 그러는 동안 서로간의 신뢰도 덤으로 쌓이게 된다.

  대통령보다 높은 자리가 “대한민국 청소년과 수험생”, 세상에서 제일 힘든 직업이 “대한민국 고3 엄마”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청소년기의 자녀가 공부를 제외한 모든 일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이러한 의존적인 관계가 지금까지 연장되어 현재 어린이 포스테키안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어린이 포스테키안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