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제는 문화기업이다
[기고] 이제는 문화기업이다
  • 김우정 / 문화마케팅 전문가·문화마케팅센터 대표
  • 승인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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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기업문화마케팅이란 무엇인가?
▲ 포스코가 후원한 오페레타 '박쥐'의 공연 장면
현재 대한민국 기업에 있어 문화마케팅이란 매우 귀찮지만 버릴 수도 없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다. 기업의 부와 이윤이 축적될수록 사회환원에 대한 주변인의 시선은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시선을 적은 투자로 크게 포장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바로 문화예술지원, 소위 기업의 문화마케팅이라고 불리는 공헌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문화예술을 지원이나 후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기업의 미래는 보장받기 힘들다. 이제는 문화예술도 국가를 지탱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고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는 기존의 ‘메세나 대상’을 확대하여 월별로 메세나 우수기업을 선정하여 표창하고 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기업들의 집안잔치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메세나 대상의 취지자체는 훌륭하지만, 시상의 기준이 외형과 규모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날이 대중화 되어 가는 문화예술시장을 자칫 고급문화 중심으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아무래도 대기업의 문화예술지원은 격과 품위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지난 6월 메세나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포스코의 경우, 지역주민들을 위한 클래식 공연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포스코의 문화예술지원은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좋은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의 문화예술지원 혜택을 받고있는 일부 지역주민들은 포스코의 메세나가 너무 홍보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세계 초일류 기업들은 어떻게 문화예술을 활용하고 있을까? 또한 대한민국 기업의 문화마케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과연 무엇일까? 문화마케팅이란 어떤 것일까?


세계 초일류 문화마케팅

초일류 기업의 문화마케팅이 우리와는 무언가 크게 다를 거라고 기대한 분들이 계시다면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그들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문화예술과 관계하고 있으며, 그 상식의 시작은 바로 문화예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정립이기 때문이다. 즉, 기업과 문화예술의 관계를 기생(寄生)이 아닌 공생(共生)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 차이의 출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매우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기업과 문화예술은 돈이 많고 적음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그러한 발상의 전환에 너무나도 인색하다.

세계 초일류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면 성공하는 기업의 문화마케팅이 경쟁사와 매우 차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기업들 모두가 자사만의 독특한 문화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경쟁사가 문화마케팅을 펼치면 그보다 더 크고 화려한 문화마케팅으로 응수하는 대한민국 대기업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 문화마케팅을 펼쳐온 글로벌 기업들의 역사가 매우 유구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결코 문화마케팅을 정략적인 목적이나 여론호도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기업들의 이러한 행위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무례(無禮)로 기업의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회공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꼭 대기업이라고 초일류 문화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대기업 문화마케팅의 천국이라면 유럽의 경우 중소기업이 주축이 된 1)메세나(Mecenat)가 매우 활발하다. 독일의 에센에 있는 기업 ‘슈터(Sutter)’의 대표 ‘마틴 슈터’씨는 “메세나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큰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면서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것이 스포츠에 돈을 쓰는 것보다 당신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Sponsoring the arts makes you stand out far more than sponsoring sport)”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크다고 반드시 문화마케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마케팅의 성공은 그 비용적 투자보다 정신적 투자가 더욱 중요한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문화마케팅

사실 문화마케팅은 몇몇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화예술을 듣고 보고 즐길 수 있는 개인과 기업, 그리고 단체라면 누구라도 문화마케팅의 공헌자 혹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아마도 대기업의 문화마케팅이 사회의 화두가 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자산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문화예술의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형성된 공감대란 것도 문화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지는 사회현상일 뿐이다. 정말로 바람직한 문화마케팅이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문화예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나름의 역할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문화마케팅이 소개되고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이 고작이다. 관련 전문가도 부족하지만 문화마케팅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특히 문화예술 인프라의 대도시 쏠림 현상은 문화마케팅 확산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화예술의 소외현상은 사회정서에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먹고 자고 입는 것이 풍족해지면 자연히 즐길 거리를 찾는 존재이며, 문화예술은 그러한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최후의 욕구총족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기업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매우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 드라마와도 같은 일이다. 급속한 기업의 성장은 기업문화가 여물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한다. 바람직한 기업문화는 기업과 문화예술의 성공적인 만남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이야말로 이제는 기업문화가 문화기업으로 변화하는 분명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성공적인 문화마케팅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문화를 문화를 먼저 생각하는 기업, 사회와 함께 봉사하는 기업, 사람을 먼저 헤아리는 진정한 문화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작지만 아름다운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中 >


1) 메세나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등 문화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로마제국의 정치가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에서 유래한다.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쓴 이후, 각국의 기업인들이 메세나협의회를 설립하면서 메세나는 기업인들의 각종 지원 및 후원 활동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예술·문화·과학·스포츠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익사업에 대한 지원 등 기업의 모든 지원 활동을 포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