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평론] ☞ 텔미썸딩
[나도 평론] ☞ 텔미썸딩
  • 박정익 / 전자 2
  • 승인 199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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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현 감독 새로 하드고어 스릴러 시도
스릴러 ‘틀’ 못 깨 영화내용 ‘혼란’
어느새 가을이 지나 겨울의 문턱에 와있음에도 때 아니게 우리는 지금 많은 스릴러와 공포영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한 세기말의 분위기에 13일 날 개봉한 <텔미썸딩>은 그 가운데 차별화 전략으로 세 가지를 선택했다. 한석규와 심은하라는 국내 최고의 배우들 , ‘하드고어 스릴러’라는 새로워 보이는 장르, 접속의 장윤현.

‘하드고어’는 굳은 피*선지를 뜻하는 말로 영화상에서 엽기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많아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잔인하다’라는 정도가 넘는 영화를 말한다. 물론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 혹은 B급의 그런 영화들 통해 ‘하드고어’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텔미썸딩>의 질펀한 피에는 이제까지 한국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화려함과 사실 감이 있다. 도입부에서 시체의 팔을 절단할 때 스며 나와 번지는 피, 엘리베이터에서 터지는 핏덩이들, 오형사가 꾸역꾸역 뿜어내는 피바다. 사실 이 영화의 주연은 ‘피’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만큼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보이며 특수효과에 있어서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석규와 심은하는 이 영화에서 그다지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석규가 곧 잘하는 피곤해 보이는 표정은 이제 관객들에게 공감과 연민보다는 지루함을 줄지도 모른다. 심은하의 차가움과 냉정함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심은하만큼 그런 냉정한 사악함을 나타낼 수 있는 배우는 국내에 없다. 하지만 채수연이 어렸을 때 받은 아픔을 내면으로 나타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는 채수연의 행동이 동기가 불분명해 보이는 원인이라 생각한다.

영화란 어차피 허구이며 관객들의 관람 행위는 그런 허구에 몰입하는 또 하나의 거짓이다. ‘스릴러’야말로 영화의 그러한 속성에 가장 잘 맞는 장르이다. ‘스릴러’에는 관객들과 영화간의 게임이 있다. 서로 속고 속이며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텔미썸딩>은 이제까지 ‘스릴러’ 장르가 만들어온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의 그늘 아래 있다. 섹스가 피로 바뀌었을 뿐이다. 관객들이 예상하는 범인은 그대로 ‘나는 범인이다’라고 인정하는 듯하다. 이러한 장르에 익숙한 사람은 예고편만으로도 범인이 누군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텔미썸딩>은 장르 안에서 어떤 창조성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긴장의 완급 조절 역시 실패했다. 도입부만이 그런 대로 흥미를 유발할 뿐 후반부로 갈수록 난잡하게 복선과 단서만을 흘릴 뿐이다. 그러한 불친절함은 혹시 원래 첫 편집이 2시간 40분이었다는 감독판을 출시하기 위함이거나 다들 한번씩 영화를 보게 하기 원한 마케팅 전략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자리를 뜰 때 뭔가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감독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열린 결말이기를 원했고 판단은 관객의 선택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외부와의 단절과 학대의 고통에서 나온 관계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즉 제목이 말해주는 그대로 채수연이 조형사에게 ‘something’을 말해주는 영화이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감독이 말한 ‘주제’를 쉽게 발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역시 장윤현 감독은 멜로 드라마에나 어울리는 감독으로 남을까? 흥미로운 현상은 PC 통신상에서 네티즌들은 역시 ‘주제’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말도 안돼 보이는 복선과 단서를 어떻게든 간에 이어 맞추어 벌써(?) 그들 각자만의 결론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접속’을 통해 PC 통신을 소재로 단절과 의사소통에 대해 얘기하던 장윤현의 다음 작품이 이러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아이러닉함을 느낀다.

그래도 장윤현은 장윤현이다. 더구나 미술감독, 촬영감독도 그들의 filmography를 소개하면 다들 한번씩 고개를 끄덕일만한 분들이다. 영화는 확실히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준다. 어둑어둑하면서 끈적끈적한 비가 도시의 뒷골목에 쳐 박혀 있는 주인공을 덮을 때 High Angle Shot이라도 나온다면 세기말의 외로운 관객들은 영화에 푹 빠져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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