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점 인플레이션과 학습시간 저하에 대한 우려
[사설]학점 인플레이션과 학습시간 저하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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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14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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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포스텍 재학생의 A학점 취득 비율은 54%로 전국 주요 대학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점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통계에서도 포스텍이 전국 주요 대학 중 가장 높은 80.23점을 기록하여 학점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또한 2001년도에는 3.1점에도 못 미쳤던 재학생 학점 평균이 2009년도에는 3.4점을 상회했다.

이러한 학점 상승이 학생들의 학습량 증가와 노력의 결과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실제로 수업시간을 제외한 포스텍 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학생상담센터에서 2006년 11월과 2009년 11월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2006년 23.07시간이었으나 2009년도에는 20.52시간을 공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포스텍 학생들의 학습량은 줄었지만 평균 학점이 향상된 기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의 개연성은 최근에 입학한 학생들이 예전의 학생들보다 훨씬 똑똑해서 공부를 적게 하고도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었으리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포스텍에서 10년 이상 가르친 교수들 중 이 점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점 인플레이션은 교수들이 과거보다 학점을 후하게 주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이공계 국가장학금의 수혜 기준이 높아진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포스텍 학생들이 이공계 국가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 학점 규정 때문에 이를 받지 못한다면 문제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학점 인플레이션 문제와 관련하여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즉,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당장 학교에서 추가적으로 장학금을 지불해야 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교수와 학생 그리고 학교 당국 모두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우선, 교수들 스스로 강의에 보다 충실하게 임해야 한다. 충실하지 못한 강의는 자칫 후한 학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매 시간 강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며, 수업 결손이 없어야 한다. 학회 참석 등 부득이한 휴강에 따르는 보강이 확실히 시행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버거워할 만큼의 과제와 시험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 MIT의 과목 설명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MIT의 각 과목 설명에는 3-0-6 혹은 4-0-8과 같은 숫자가 기술되어 있는데, 처음 숫자는 학점을 의미하고 마지막 숫자는 학생들이 강의시간 이외에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을 표기한 것이다. 즉, 어떤 3학점 과목을 성공적으로 이수하기 위해서는 수업 외 6시간을, 4학점 과목은 8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MIT 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이 포스텍 학생들의 두 배가 넘는 40~50시간이라는 보고는 위의 경우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학생들은 적당히 공부를 하고 학점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MIT 학생들이 주당 40~50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는 이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밤새워 게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잦은 음주로 학습할 시간과 건강을 빼앗기고 있지 않은지, 혹은 학업 대신 동아리 활동 등에 ‘올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학부 때 쌓아놓은 전공,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식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대학원 학습과 사회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학교 당국은 학점 인플레이션이 생겨난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조속히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학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학점 분포에 대한 개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학교 당국은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수들이 강의를 충실하게 하게끔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전에 논의된 바 있는 야간 일정 시간 인터넷 접속 금지 방안의 즉각적인 실시와, 교수 업적 평가, 승진 및 테뉴어 심사에서 교육에 대한 비중을 상향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점 인플레이션은 그동안 포스텍이 쌓아온 엄격한 학사관리 전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건이다. 이를 올바로 인식하고 포스텍의 모든 구성원은 엄격한 학풍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포스텍과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 당신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