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대안공간의 출현과 의의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대안공간의 출현과 의의
  • 전정옥 / 쌈지스페이스 제2 큐레이터
  • 승인 200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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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은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미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세대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 정착되어오고 있다. 이들은 대중소비사회의 스펙타클과 일상성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매체연구와 실험으로 관객과의 소통 문제에 주목할 뿐 아니라, 타분야, 타문화와 교류함으로써 가변성, 혼성, 다가치성이라는 포스트모던 미학을 실천한다. 이들은 또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위해 전통회화나 조각보다는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를 사용하고,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매체와 영상매체를 활용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실험적, 진취적 미술을 만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성미술에 대한 신선한 자극과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세대 작가들의 제도비판이나 새로운 미술경향에 대한 의식은 대안공간을 통해 소개되고있는데 이 대안공간은 일반 미술관이나 화랑공간에서는 전시하기 어려운, 또는 그러한 제도적 공간에 대한 도전으로 제작된 초대형 오브제 작품,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 공공 환경미술, 미디어 영상 작업, 첨단 테크놀러지 작품 등을 소개하는 장소의 기능을 한다.

한국에 대안공간이 등장한 것은 1999년으로 자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자생적인 미술운동이다. 그 촉발 계기는 IMF가 몰고 온 경제위기로 당시 새로운 사회풍조,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으로 전면화된 국제화, 세계화가 한국화단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작품활동이 어려운 젊은 작가들은 작가적 생존을 위한 해결책을 강구하여야만 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99년 루프를 비롯, 풀, 사루비아에 이어 2000년 인사미술공간, 일주아트하우스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 공간들은 각각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지원목적에 부합하는 작가를 발굴, 전시해오고 있다.

1999년 2월 개관한 루프는 전시와 함께 퍼포먼스, 이벤트, 콘서트 등, 타분야와 네트워킹하는 열린 시스템으로 언더그라운드와 대중소통을 성취한다는 목표 하에 록공연, 패션쇼, 저예산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같은 해 작가,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기획위원회에 의해 발족한 풀은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우수작가들의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개인전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체 기획전으로 비판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1999년 4월 현역작가 및 후원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의 출자로 세워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은 공모와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된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정체성이 뚜렷한 전시를 선보이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2000년 5월 탄생한 인사미술공간은 공모전을 통한 작가발굴과 기획초대전으로 진취적인 실험작품을 전시하는 한편 디지털 시대의 예술, 회화언어의 확장, 퍼블릭 디자인 개발, 정체성 탐구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0년 10월 개관한 일주아트하우스는 비영리 미디어센터로 전시공간인 미디어 갤러리 이외에 최신 6종의 편집장비를 갖춘 스튜디오를 작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상의 자생적 대안공간의 출현과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쌈지스페이스는 창작스튜디오, 갤러리, 미디어시어터를 갖춘 복합문화공간이자 패션업체㈜쌈지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문화공간이다. 쌈지아트프로젝트는 쌈지스페이스의 전신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1년 간 작업실을 제공하는 스튜디오 프로그램으로 시작하여 2000년 홍익대 부근으로 이전하여 스튜디오와 함께 전시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데 1년에 6-8회 기획전을 갖고 신진작가 발굴과 등단에 기회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신진작가 발굴과 작가들의 해외지출을 위한 국제교류가 쌈지스페이스 후원사업의 양대목표이다. 특히 연례 국제교류전은 작가들의 해외진출을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외국 작가들의 실제적 만남과 소통의 시너지가 창조 의욕과 발상을 진작시키고 대화와 정보의 교환으로 발전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시작되었다. 1회 서울/뉴욕(2001), 2회 서울/파리(2002), 3회 서울/독일(2003)교류전에 이어 2004년 서울/호주전을 개최할 예정으로 쌈지스페이스 국제교류전은 한국미술계의 생장점이 될 수 있는 창의력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창작과 국제진출의 기회를 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은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미술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실험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청년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노력해 온 한국형 대안 공간들의 활동에 의해 발전되어 왔고 그들의 역할은 한국현대미술에 있어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 공간의 프로그램이 젊은 작가 발굴과 지원에 초점을 맞추며 청년미술에 국한되어 운용된다는 점은 앞으로 각 공간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이들의 취지나 목표가 신진작가 발굴과 더불어 세대, 젠더, 이념을 넘은 상호연대 및 특성화에 주력한다면 한국 대안미술, 대안공간이 꿈꾸는 반제도적 저항과 탈장르 미학을 도출하고 청년문화를 발전시키며 동시에 한국미술문화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전정옥 / 쌈지스페이스 제2 큐레이터 /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구겐하임 미술관과 뉴욕근대미술관 인턴을 거친 후 2002년부터 쌈지스페이스 제2 큐레이터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