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스텍의 국제화와 학부 영어 강의
[사설]포스텍의 국제화와 학부 영어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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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09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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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전세계 무한 경쟁이 진행됨에 따라, 정부, 기업, 교육 및 연구 기관 등 모든 부문에서 국제화가 중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 교수, 연구원의 국제 교류가 날로 활발해지고, 국제적인 인지도의 향상은 개개 대학에 있어서 대학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대의 요인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세계 선두 그룹의 대학을 지향하는 포스텍의 경우, 국제화 또는 국제적 인지도의 향상은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이루어야할 절대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학 발전의 핵심 키워드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국제화, 국제적 인지도의 향상을 어떻게 가늠할 것인지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제 대학평가의 항목들이 이미 대학 국제화 성공 여부의 지표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평가 순위를 올리기 위해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연구기관과 학자의 유치, 외국인 학생 및 영어 강의 비율 증대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 방위적인 노력이 포스텍을 포함한 모든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 중 영어 강의는, 학력의 저하라는, 당장은 눈에 띠지 않는 문제의 가능성으로 인해 그 선택 여부에 대해서 꾸준히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확실한 순위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모든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제화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대학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모두 적합한 것은 아닐 것이다. 포스텍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국제화의 방향은 어느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포스텍이 그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스텍은 지난 20년 간 막강한 재단과 우수한 교직원, 학생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서의 인상을 적어도 국내에서는 성공적으로 인식시켰으며, 실제로 질적인 연구 수준에서는 목표로 하고 있는 세계 20위권에 바짝 다가서 있다. 법대, 경영대, 의대도 없이 오직 이학과 공학만으로, 규모가 작고 결코 화려하지도 않지만 “연구 실력만큼은 확실하게 훈련받을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은 것은 놀라운 성과이고 앞으로도 반드시 지키고 더욱 부각시켜야 할 강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어 강의, 특히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강의는 신중히 다가설 필요가 있다.

교재도 영어로 되어 있고, 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인문학도 아닌 이공학 강의를 영어로 한들 얼마나 지장이 있겠느냐 한다면, 이는 학부 강의의 속성을 모르는 말이다. 학부 강의의 핵심은 지식의 전달에 있지 않다. 학생들로 하여금 학문의 기본개념을 분명히 이해하게 하고 학문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여, 전달되는 지식 이상을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 학부 교육, 학부 강의이어야 한다. 학문의 세계에 막 입문한 어린 학생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이 학부 강의의 핵심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감성을 자극할 정도의 교감이 영어로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영어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직접적인 지식 전달의 부족 이상으로 학생들의 강의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림으로 인해, 학력의 저하는 물론 학문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커다란 위험부담을 가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위험성은 자각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이 된 상태일 것이므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포스텍 최대의 강점인 연구 실력에 적지 않은 손상을 줄 것이다.

포스텍이 지향하는 연구 실력이란 세계 100위, 50위권이 아니다. 세계 20위권, 그 이상의 실력이다. 주지하듯이 이는 학생들의 학문, 연구에 대한 열정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학부 영어 강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나 국제적인 인지도를 향상시키는 방안이기보다, 학생들의 강의 집중도와 학문에 대한 흥미 감소를 담보로, 평가 지표를 만족시켜 대학 평가 순위를 높이는 방안에 가깝다. 이는 200위권, 100위권 대학이 100위권, 50위권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일 것이나 세계 20위권 이상을 지향하는 대학이라면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 달콤한 유혹이라 할 수 있다.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심각한 장기적 위험성을 가진 방안을 전격적으로 시행하기보다는, 부분적인 시도와 보완의 반복이라는 신중한 접근 방법을 택함으로써,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작지만 강한 대학 포스텍에 어울리는 국제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 같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