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항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간다. 우리대학의 경우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제한된 공간에서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고,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생활한다.
누구나 인간관계를 맺고 함께 하지만 또한 가장 어려운 것도 역시 인간관계일 것이다. 특히 대학교는 성인이 되어 처음 접하는 사회로, 중고등학교 시절에 비해 급격하게 달라진 주위 환경으로 인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포항공대신문사에서는 포스테키안의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학우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학부생 전원에게 10월 29ㆍ30일 이틀간 설문을 실시했으며, 학부 재학생 1,323명 중 190명이 응답했다. <편집자 주>
올해 2학년인 철수는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논스톱’에서처럼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왔던 그런 환상, 힘든 입시 속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포스텍 입학 후, 분반에서 분반장도 맡으며 활발하게 분반활동을 했고 동아리도 들어가 열심히 활동했다. 물론 과행사도 꼬박꼬박 참여했다. 그러나 2학년이 되어서 분반보다는 학과친구들과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고, 동아리 활동으로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분반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자,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어색해짐을 느낀다. 그는 항상 같은 고민을 한다. 왜 대학에 와서 사귄 인간관계는 오래가지 못하는 걸까? 내 개인적인 성격 탓일까? 아는 사람은 많아지는데 왜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걸까?’
이것은 일부 학우들의 고민만은 아니다. 이번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숫자로 드러났다. 2009년 현재 포스테키안의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RC에 사는 영희는 9시 반 수업을 위해 9시에 방에서 나와 공학동으로 향한다. RC에서 공학동까지 대략 15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지만 강의실까지 걸어가며 영희와 인사를 나눈 사람들은 10명이 훌쩍 넘는다. 친한 분반 친구, 개강총회에서 만난 어색한 분반 선배, 이름도 잘 모르고 인사하는 어색한 후배 등 인사하는 사람은 참 많다. 가끔 영희는 자신의 넓은 인맥에 뿌듯해 하기도 한다.
과연 포스테키안이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연락 유무와 상관없이 핸드폰에 번호가 저장되어있는 우리대학 학생 수’를 묻는 질문에 53.4%가 100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그중 200명이 넘는 사람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고 답한 학우도 25%나 되었다. 1,300여 명의 우리대학 학부생 수를 감안한다면 매우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중 ‘대학 와서 알고 인사하는 정도의 사람’은 얼마나 될까? 50%는 70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그 중 30%는 100명 이상의 학우들과 인사를 하고 지낸다고 한다. 우리대학 학생 두 명에 한 명은 70명 이상과 서로 인사할 정도는 알고 지낸다는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관계는 주로 어디서 형성될까? 신입생 때 20명씩 한 분반으로 배정되어 분반끼리 수업을 듣는 구조상 친구를 사귀는 데 분반이 1순위라는 대답이 43.3%로 가장 많았고, 동아리ㆍ자치단체 등 과외활동이 28.8%, 학과가 27.2%로 그 뒤를 이었다.
08ㆍ09학번의 경우 53.1%가 1순위가 분반이라고 답한 데 반해, 06학번 이상은 28.8%라 답해 큰 차이를 보였다. 반대로 08?9학번 중 18%가 학과가 1순위라고 답했고, 06학번 이상은 37.2%라고 답해 친한 관계를 맺는 집단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분반에서 학과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외활동에 대한 차이는 학번 별로 크지 않았다.
영수는 심심해서 자주 만나는 친구를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연다. 저장된 번호는 많지만 결국 항상 연락하는 5명에게 전화를 한다. 항상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라 소중하지만, 그래도 힘들 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이 중 2명뿐이라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설문 결과 ‘인사정도만 하는 사람’이 아닌 ‘수시로 연락하는 사람’은 3명 이상 5명 이하가 34.7%로 가장 많았고, 7명 이상이 31.6%, 5명 이상 7명 이하가 26.8%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 3명 이상과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지만 보통 7명 이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는 사람이 많다고 깊은 관계를 유지할만한 사람도 많아지는 것일까? 결과는 ‘글쎄’이다.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48.9%가 1명 이상 2명 이하라고 답했고, 3명 이상 5명 이하가 34.7%로 뒤를 이었다. 대부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1명에서 5명 정도인 것이다. 한 명도 없다는 대답이 7%나 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결과이다.
1년 휴학 후 복학한 지희는 함께 1년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친하게 지내던 세진이와 학생회관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뭔가 어색하고 알 수 없는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른다. 긴 정적을 깨고 지희가 먼저 말을 건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나야 잘 지냈지.”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어색한 대화가 끝이 나고 각자 가던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대학에 와서 인간관계에 대해 아쉬운 점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 절반 이상의 학우들이 ‘피상적 인간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가벼운 관계가 많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학업으로 인한 개인주의의 가속화’, ‘친구라기보다는 동료나 인맥 같은 느낌’, ‘자기중심적이고 배려하는 모습이 부족하다’, ‘공과대학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기가 힘들다’, ‘먼저 다가가려는 적극성이 부족하다’, ‘술자리 위주의 관계’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아쉬운 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학우들이 포스텍만의, 포스테키안이기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았던 점도 말해주었다. ‘적은 수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대학보다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시간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또 ‘공대생으로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함께 같은 공부를 하기 때문에 서로 친해지기 쉽고 소통하기 쉽다’는 의견도 많았고, ‘고등학교에 비해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알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은 비단 특정 학우에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설문에서 71.4%의 학우들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77.8%가 대학 와서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스스로 100점 만점에 65점을 주었다.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에 비해서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고등학교 때는 모든 수업을 같이 들으며 많은 시간을 서로 공유하지만, 대학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각자의 생활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 공유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한 학우의 말처럼 ‘얄팍한 인간관계의 주된 이유는 남 탓이 아니라, 남 탓만 하고 있는 자기 탓’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고 서로의 탓만 한다면 불만만 쌓여가고 관계 개선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학우는 인간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했다. ‘인간관계는 역지사지다.’ 스스로 타인에게 얼마나 열린 사람이었는지,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나에게 한동안 연락이 없어 서운한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나를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건 어떨까? “우린 친구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