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정체성, 가치관, 그리고 지식
[노벨동산] 정체성, 가치관, 그리고 지식
  • 박성진 기계교수
  • 승인 2009.10.14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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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포스텍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 후 LG생산기술원(현 생산성연구원)에서 4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상무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상무님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큰 감동을 경험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이야기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는 유명한 말처럼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LG를 비롯한 많은 대기업들은 새롭게 선출된 임원진들 중 몇 명을 선발해서 경영학 학교가 아닌 심리학 학교에 보낸다고 한다. 이 심리학 학교는 6개월 과정으로, 10년 전에 필자가 들었을 때의 수강료가 5,000만 원 정도였다. 처음 2개월 동안은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의 반응을 오디오ㆍ비디오 등으로 기록해서 개개인의 반응에 대해 분석한다.


‘왜 똑같은 환경을 만났는데 사람마다 그 반응이 다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심리학 학교에서는 50%가 자신의 정체성(belief)과 관련이 있고, 35%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sense of value), 그리고 나머지 15%는 지식(skill)이라는 이론에 근거하여 참석자들의 반응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나는 어느 가문 출신인가?’, ‘나는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가?’ 등 자기 자신을 묘사하는 정체성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가 자신의 말과 행동의 50%에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치가 있느냐?’ 또는 ‘어떤 것이 자기가 보기에 좋은가?’라고 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신의 기준인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 자신의 반응의 35%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성 또는 가치관까지 승화되지 않은 머릿속의 지식이 자신의 행동의 15%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이론에 근거하여 한 달 동안 참석자에게 각자의 반응에 근거한 분석 결과를 알려준다. 나머지 세 달 동안은 다시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반응하게 한 후 다시 새롭게 반응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예를 들면 ‘당신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처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 배경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서 당신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응하면 어떨까요?’와 같이 보다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자세(attitude)를 바꾸도록 도와준다.


이 심리학 학교에서는 3개월 동안 매일 이것을 반복하면 자신의 체질이 되어서 평생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3개월 이상 매일 조깅을 하다가 하루 조깅을 빠지면 몸이 무엇인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같이 허전한 것을 느끼는 것처럼, 조깅하는 것이 이미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다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단지 자신의 경험을 반성하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성자(反省者) 수준을 넘어서 ‘왜 내가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가?’, ‘나의 어떤 내면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을까?’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내성자(內省者)의 수준으로 바꾸려고 하는 습관을 참석자들에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업이 수억 원을 몇몇 사람들에게 투자하면 그들이 그 비용의 수십 배를 회사에 이익으로 환원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포스텍 학생들에게 필자가 느낀 느낌 즉,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전해지길 바란다. ‘어느 학과가 가장 많은 CEO를 배출했는가?’라는 미국의 연구논문에서 자연과학대와 공대가 꼴지를 했다는 기사를 읽을 적이 있다. 논문에서 1등은 역사학이고 2등은 인류학이라고 전하면서, 그 이유를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포스텍에 있는 우리들이 인문과학 분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강연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