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 - 신자유주의와 청담동 문화
문화 비평 - 신자유주의와 청담동 문화
  • 한종해 / 자유기고가
  • 승인 200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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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동,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그들’만의 풍경
“한 벌에 200만원 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블랙 레이블을 입고 30만원 짜리 발리 구두를 신고 400만원 짜리 카르티에 손목시계를 찬 채 1만원 짜리 커피를 마시며 3천만원에 사기로 한 ‘김환기’의 그림에 관해 담소를 나누며, “헤어스튜디오에서 머리를 한 뒤 1만원을 팁으로”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 잔에 2만원 짜리 포도주를 곁들여 5만원 짜리 퓨전식 가자미 요리로 식사를 하는” 그런 입맛을 가지고 있어서, “가격보다는 음식맛과 친절도, 손님을 알아주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며, 마음에 드는 곳을 계속 정해두고 다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사는 동네에는 “최고급 브랜드의 명품점, 고가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갤러리, 한잔에 1만원 하는 커피에 한 조각에 1만 2천원 하는 케이크가 곁들여지는 세련된 카페들, 한 개비 2만원 하는 시가를 물고 한잔 1만5천원 짜리 무지갯빛 칵테일을 즐기는 초호화 바”와 성형외과는 도처에 널려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버스카드 충전소나 버스에서 오르내리는 손님, 전세살이 가구, 구멍가게, 편의점, 목욕탕, 외과나 내과, 선술집과 호프집, 철물점 같이 정작 서민적인 생활에 친숙한 곳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얼마전 <한겨레21>에 실린 기사가 거짓이 아니라면 이러한 풍경이 펼쳐진 서울의 ‘청담동’은 독특한 생활양식과 문화적 취향을 가진 집단들의 아지트쯤으로 다른 여타의 한국 사회와 ‘구별’지을 수 있겠다.

언뜻 보면 이들이 강남 8학군을 나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유학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공인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직이나 언론사 간부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경제학적 분석틀을 동원한다면 이들을 쁘띠부르주아 상층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경제적 토대로 사회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정치경제학의 사고처럼 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시키는 동인이 경제적 혹은 계급적 위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 재벌 혹은 그 2세들과는 구별되는 문화적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비슷한 경제적 자본을 지닌 졸부나 여타의 쁘띠부르주아 상층과도 다른 생활양식과 미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노동자나 농민, 도시 서민들의 생활양식과도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베버의 표현을 빌자면, ‘계급’과는 분명히 다른 ‘지위집단’적 특징들이 이들을 결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랜 외국 유학의 경험을 통해 체화된 서구 여가문화의 습성과 이를 통해 배양된 서구화된 미적 감각, 그리고 그들의 학력과 외국 학위들이 보여주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엘리트라는 지적 자부심 등이 이들의 경제적 부에 덧붙여져서 내적으로 폐쇄된 독특한 ‘청담동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여타의 사회와 ‘구별’지었던 것은 오히려 외부적인 시각이나 외부적인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내부적인 자발적 의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들을 여타의 사회나 여타의 계급과 계층, 여타의 문화와 ‘구별짓기’를 시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는 이들의 ‘구별짓기’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구하기 위해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커다란 변화의 와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신자유주의적 개편으로 얘기되는 이른바 ‘세계화’ 또는 ‘지구화’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들 전문직들이 사회의 전면에 화려하게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개발독재 아래에서 ‘재벌’의 형태로 부를 획득한 부류와 부동산 공화국 하에서 부를 획득한 졸부들의 ‘룸살롱 문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여가와 학위를 내세워 새로운 엘리트로 등장한 이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재생산하기 위한 게임 전략의 하나로 의도한 것이 바로 ‘청담동 문화’라는 것이다.

‘룸살롱 문화’의 퇴폐성을 대체하려는 의도와 ‘민중 문화’의 ‘저급한 전투성’과의 거리감을 극대화시켜 자신들의 여가문화와 생활양식을 새로운 고급함의 기준으로 세워낸다면, 이는 문화적 계급투쟁의 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여가의 소비’, ‘문화의 소비’가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및 경제적 전략이라는 점에서도 ‘청담동 문화’는 가히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반해 한때는 룸살롱 문화의 퇴폐성과 강력하게 투쟁하는 것처럼 보였던 민중 문화는 그 헤게모니를 상당 부분 상실한 것 같고, 소비문화라는 점에서는 청담동 문화와 궤를 같이 하지만 비타협성과 무정부성에서 주목을 끌었던 ‘압구정동 문화’는 오히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여전히 10대들만의 장에서 용인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도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한경쟁의 사회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연장으로 인해, 학생들은 자신의 몸에 붙여질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각종 자격증 획득과 일류대학 졸업장 획득을 위한 공부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한창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요인 속에서 문화적 투쟁의 장, 문화적 재생산을 위한 게임의 장이 재편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청담동 문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전문직들의 문화가 별다른 저항없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아직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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