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헐리우드는 왜 서로 닮아 가기만 하나
현실과 헐리우드는 왜 서로 닮아 가기만 하나
  • 박정준 기자
  • 승인 2001.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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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센터에 충돌직전의 테러 비행기
9월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일대 참사가 있었다. 범인이 채 밝혀지기도 전부터, 분노와 슬픔에 가득찬 미국인들의 시선은 아랍으로 향해 있었고, CNN은 기쁨에 겨워 축포를 발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담은 정체불명의 수상한 필름(걸프전때의 영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됨)을 전세계에 방송하고 있었다.

범인은 아랍계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 하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테러를 당한 이유는 ‘자유’와 ‘기회’가 가장 빛을 발하기 때문이며 테러리스트들을 문명에 저항하는 ‘evil’로 규정했다. 바야흐로 ‘불의’에 맞서 ‘정의’가 일어서며, ‘악당’을 분쇄하기 위해 ‘보안관’이 일어서는 헐리우드 식의 이분법이 완성되고 있는 순간이다.

냉전 종식 이후, 한동안 테러리즘을 다룬 영화에서 악역은 아랍인들이 도맡아 했다. 그들은 비행기를 납치하고[델타 포스, 화이날 디씨전], 고층건물을 점거하며[트루 라이즈], 버스와 초등학교를 날려 버린다[비상계엄]. 힘이 지배하는 국제 정치 구도하의 약자에게 있어, 테러리즘은 자신들이 처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전달하려는 극히 ‘비정상적인’ 메시지 전달수단이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전달하려던 메시지를 얼마나 자세히 보여주던가? 지도자의 석방을 요구하거나, 복수를 부르짖고는 있지만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는 공허하게만 들린다. 어차피 영화의 목적상, 그들은 2시간안에 분쇄되어야 하는 악당들이기 마련이고, 관객은 그들에게 분노하고 있어야 한다. 어설프게나마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시키려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의 죽음에 관객들이 느낄 카타르시스를 약화시킬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의 테러리스트들은 종교적 광신에 신들려 있거나, 세계를 파탄낼 야욕에 사로잡혀 있는 정신병자들이면 충분한 것이고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 지는 전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미국 묵인하에 이스라엘이 총칼로 고무총으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것과 연관시킬 필요도 없고, 컴퓨터 게임 같은 크루즈 미사일 공격에 두동강이 나는 이라크인들의 죽음도 떠올릴 필요가 없으며, 미국 주도의 경제 봉쇄로 굶어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어린이들을 떠올릴 필요도 없게 만드는 것, 이것이 미국의 대외정책 입안자들이 헐리우드에 바라는 것이며, 오로지 남는 것은 악당과 보안관, 악과 선의 이분법의 구도이며 미국대중들은 미국 정부의 이런 질서유지 방식을 칭송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참사는 상상력과 규모면에서 헐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을 비웃는 듯 하지만, 언론과 미국정부에서 사태를 이분법 구도로 몰아가는 방식은 헐리우드 영화를 무색하게 한다. CNN은 요상한 악마사진을 건물 붕괴 사진에 중첩시키고 있고, 부시 대통령은 폐허에서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미국 젊은이들은 군대에 자원입대하고 있으며 아랍에 대한 증오로 몸부림치고 있는 듯하다. 부시 대통령 말마따나 ‘조용한 분노속에’ [람보]가 상처를 손질하고 머리띠를 다시금 고쳐매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참사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변명을 할 구실도 주지않을 만큼 처참했다. 하지만 미국이 헐리우드 식의 이분법으로 사태를 수습해 나가려는 방식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태의 원인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인 보복이면 충분한 것일까? 사태의 원인을 알려면 테러의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부터 되새겨야 할 것이다. 부시가 직접 언급한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신자유주의)’와 ‘기회’가 얼마나 많은 세계 사람을 비참한 삶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특히 아랍세계의 심장에 가시처럼 박아 넣은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존재와 미국 묵인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얼마나 아랍인들을 ‘비정상적인’ 환경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다소나마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정상적인’ 요인이 사라질 때, ‘비정상적인’ 메시지 전달수단인 ‘테러’도 그 당위성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다.

아니면 하던대로 하되, 모든 미국의 공공장소에는 데이빗 던[언브레이커블]이나 닉 홀튼[에어포스 21], 해리 타스카[트루 라이즈]같은 영웅(Hero)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헐리우드 영화에서 제시하는 유일한 해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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