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공학적 설계의 진실
인간공학적 설계의 진실
  • 정민근 /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승인 2007.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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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존재
  
최근 자동차·휴대폰·가전제품·가구 등의 광고에서 인간공학적(혹은 인체공학적) 디자인이라는 광고 문구가 자주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이제는 많이 귀에 익은 용어가 되고 있기는 하나,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이 국내에 보급된 지 아직 30년도 안 되어서 인간공학이라는 학문분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인간이 생활하고 일하는 환경을 알맞게 디자인하기 위해서 인간의 특성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공학의 목적은 작업장의 배치, 작업방법, 기계설비, 전반적인 작업환경 등에서 작업자의 신체적인 특성이나 행동하는데 받는 제약조건 등이 고려된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인간공학의 적용 범위는 작업장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도구·제품·시스템 등을 비롯하여 인터넷을 포함한 게임 등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사람과의 인터페이스를 가지는 모든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인간공학적 설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스템 설계의 중심에 위치한 인간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인간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기본적으로 키·몸무게 등의 인체 치수와 힘·속도·자세 등을 고려하는 신체적 기능, 그리고 시각·청각·촉각 등을 고려하는 감각적 기능, 마지막으로 기억력·주의력·정보처리능력 등을 고려하는 인지적 기능이 있다. 최근에는 그 이외에도 쾌적함·불쾌함·안락함·불편함 등을 고려하는 감성적 기능 또한 중요한 인간 기능의 한 측면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제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반영함으로써 사용자인 사람은 시스템을 편안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석 설계과정에서 인간공학적 설계가 많이 적용되는데, 우선적으로 운전자의 인체치수를 활용하여 편안하고 안전한 표준 운전자세를 선정한다. 이 때 단순히 평균값만을 적용해서는 안 되며, 응용 항목에 따라 가장 작은 사람 혹은 가장 큰 사람에 해당하는 인체치수를 활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운전석의 폭은 체형이 큰 사람의 인체치수의 ‘앉은 엉덩이너비’ 치수를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선정된 표준 운전자세에 따라 운전석, 운전 조작 장치 등의 크기와 배치가 결정되어 자동차 실내공간이 설계되는데, 최근에는 여성이나 고령의 운전자를 고려하여 해당 성별이나 연령대의 인체치수를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어깨나 손목겧蔘?등 인체관절의 동작 범위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힘 등을 고려하여 핸들이나 브레이크 페달과 같은 운전 조작 장치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결정한다. 특히 오디오/비디오, 네비게이션 등 자동차 실내에 다양한 시스템이 장착됨에 따라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이들을 쉽고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설계 문제이다.

따라서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차량 내 정보시스템(IVIS ; In-vehicle Information Syst em)의 통합컨트롤 및 통합디스플레이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주제로는 운전 중 시선분산이나 인지부하를 최소화하며 원하는 기능을 쉽게 선택하기 위해 어떠한 기능을 통합컨트롤에 넣을 것인지, 통합컨트롤 타입/위치/촉각적 피드백 뿐 아니라 통합디스플레이의 위치/메뉴 디자인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유럽 차에서 주로 볼 수 있는 BMW ‘iDrive’<사진 1>, BENZ ‘COMMAND’, AUDI ‘MMI’ 시스템 등은 이러한 연구 결과가 대표적으로 적용된 사례이며, TOYOTA, HONDA(ACURA), NISSAN(INFINI TI) 등에서도 통합컨트롤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또 다른 인간공학적 설계가 잘 적용된 예로 이제는 모든 사람이 갖고 다니는 휴대폰을 들 수 있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무전기만한 크기였던 것을 Motorola에서 1989년 소위 Folder 형태가 최초로 도입된 Micro TAC 제품을 개발하여, Folder를 열면 통화가 가능하고 닫으면 전체적인 크기가 절반 정도로 작아지게 되었다<사진 2>. 당시로서는 가장 작고 가벼운 제품으로 무게가 300g으로 병아리 두 마리 무게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이 Folder 형태는 특허 등록되어 한참 동안 타사에서는 Folder 제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 바로 이 Folder 형태의 Cover는 사람의 얼굴 면의 각도를 고려하여 가장 편안하게 밀착하도록 인간공학적인 설계를 적용한 결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고령화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국민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커지고 해서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한 설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겴瞿퍊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요즘은 특정한 그룹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는 개념으로 많은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Barrier Free 디자인으로, 즉 모든 시설이나 설비에 장애물이 없도록 설계하자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시내버스의 승강구 위치가 노면과 같도록 낮게 설계하는 것인데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이미 여러 도시에서 이렇게 설계된 버스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현재 이런 저상버스가 전국적으로 약 800대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사진 4>

이러한 유니버설디자인 개념을 국내에서 적용해서 개발한 사례로 LG전자의 WINE폰 SV300/LV3000 모델을 들 수 있다<사진 3>. 이 휴대폰은 다양한 글자 크기에 대해 사용자의 가독성/선호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기존 제품에 비해서 버튼 크기는 2배, 한글 크기는 1.8배로 확대하여 고령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용자의 사용편의성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오늘날의 시스템은 단순히 첨단 기술을 통한 기능 향상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시스템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고려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앞서 예를 들어 설명한 자동차 설계과정에서도 다양한 인체공학적 특성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인간과 시스템 내 다른 요소간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이로 인해 인간공학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가치추구에 대한 고려가 강조되고 중요시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인간공학은 그 중심에서 선도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