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포스텍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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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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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총장실 홈페이지의 역대 총장 링크를 클릭해 보면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점이 눈에 띤다. 제1대 김호길 총장(1985년 8월~1994년 4월), 제2대 장수영 총장(1994년 8월~1998년 8월), 제3대 정성기 총장(1998년 8월~2002년 8월), 제4대 박찬모 총장(2003년 8월~2007년 8월). 여기에 보이는 두 개의 공백이 포스텍이 잉태되어 스무 살 청년으로 자라면서 겪은 두 번의 홍역을 상징하고 있다.

첫 공백은 1994년 4월부터 1994년 8월까지의 공백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앞만 보고 전진하던 포항공과대학교에 찾아온 첫 시련이었다. 당시 포항공과대학교라는 이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두 기둥이 박태준 이사장과 김호길 총장이었다. ‘박태준 이사장+김호길 총장=포항공과대학교’라는 방정식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던 때였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우리에게 아무런 준비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황급히 떠나가셨다. 그 후 포항공과대학교라는 방정식을 구성하고 있던 나머지 한 변수도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의 8년간은 박태준 이사장과 김호길 총장이라는 변수 없이 포스텍을 재구성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전장에서 야전사령관을 잃은 조직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시행착오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포스텍이 전열을 가다듬느라 전투력이 떨어졌던 이 기간에 국내의 경쟁대학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그 간 KAIST를 제외하고는 포스텍의 전유물로 여겼던 전체 대학원생에 대한 인건비 지급, 적은 강의부담, 우수한 실험시설, 우수한 교수진 등의 비교우위가 이 기간 점차 줄어들었다. 그 결과 우수한 대학원생을 확보하는 것이 점진적으로 어려워졌고, 무엇보다도 우수한 신임교원을 충원하는데 어려움이 더해갔다.

바로 이런 시기에 두 번째 공백이 보인다. 2002년 8월부터 2003년 7월까지의 1년의 공백이다. 이 1년간의 공백이 발생한 과정에 대해서는 대학 구성원 모두가 잘 알고 있고, 지금 이 시점에서 그 공백을 야기한 주체를 가려내고 잘잘못을 따져 도움이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1년의 공백과 그 후 4년의 시간이 포스텍 구성원 누구에게도 포스텍이 힘차게 파도를 헤치고 전진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 따라서 나도 노를 열심히 저어야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어주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이 기간 동안 교내의 주 이슈는 대학발전을 위한 양성화된 긍정적 이슈들이 아니라 주로 음성적이고 부정적인 이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총장의 사의표명과 이사장의 반려가 반복되면서 학교 분위기는 바닥을 모르고 아래로 꺼져만 갔다.

하지만 포스텍은 역시 포스텍이었다. 2007년 이구택 이사장이 새로 선임되고 개정된 사학법에 따라 새로운 이사진이 구성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 가운데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백성기 교수가 제5대 신임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새로운 대학의 리더십에 거는 구성원들의 기대는 백성기 총장이 소집한 첫 전체교수회의에 개교 이래 가장 많은 교수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포스텍 신임 5대 총장은 기울어져가던 학교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우호적인 이사회 및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대외적인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포스텍이 경쟁대상으로 삼고 있는 거의 모든 대학들이 이제는 연구와 캠퍼스 생활면에서 포스텍과 대동소이하거나 우월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전에는 경쟁 대상으로 고려하지도 않았던 대학들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포스텍을 위협하고 있다. 포스텍 개교 이래 20년 간 세상은 많이 변했다. 환경도 변했고 사람들 생각도 변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직도 대한민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수도권에 살기를 원하고,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떻게 하면 포스텍이 지방에 위치한다는 절대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우수한 교원과 학생을 유치하고 주류에 머무를 수 있을지, 또 향후 명실 공히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제는 총장과 보직자들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포스텍이 개교 이래 대한민국 공학 및 이학 부문의 대학교육과 연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또한 어느 누구도 포스텍의 과거의 업적으로 포스텍의 현재와 미래를 평가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포스텍과 같이 관성이 작은 조직은 항상 풍전등화와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회사로 치면 포스텍은 벤처기업이다. 잘 나가던 벤처기업들도 순간 방심해 문을 닫을 때는 단돈 1,000원이 없어 부도가 난다.

하지만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이번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대학평가에서 포스텍이 다시 종합 1위를 탈환했다는 기쁜 소식 안에 숨어 있는 정말 중요한 사실은 교수당 논문 피인용 수가 타 대학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포스텍의 펀더멘탈이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쪼록 ‘이구택 이사장+백성기 총장’의 콤비가 포스텍을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자랑스러운 직장과 학교로 다시 한 번 우뚝 설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