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학교발전에 시금석(?)이 될 재수강 금지 조치
[독자논단] 학교발전에 시금석(?)이 될 재수강 금지 조치
  • 전한주 / 전자 00, 학회장
  • 승인 2002.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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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는 재수강시 학점을 B+까지로 제한하는 학칙을 1999년 2학기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는 ‘재수강생의 증가로 인한 정상적인 수강생들의 피해 최소화’라는 의도에서 시행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 제도의 시행으로 재수강 인원 감소에 효과를 보았음도 사실이다.

효과가 충분하지 않았음일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전자과는(정확히 말하자면, 전자과 교수님들은) 아예 재수강 제도를 폐지하려 하고 있다. 그것도 학생들에게 사전에 협의는 커녕 공지도 없었다. 아직 공표도 안된 이 제도를 전자과 학우들이 알게 된 연유도 이채롭다.

지난 9월 11일 모 전자과 과목을 재수강 하고 있는 몇몇 00학번 학우들은 학과사무실로부터 황당무계한 연락을 받는다. 재수강 과목을 Drop하고 빨리 다른 과목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수업을 시작한지 3주나 지난 시점이었다. 갑작스런 통보에 당황한 학우들은 학부수업 담당하시는 교수님을 찾아 뵙게 되고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너희들이 제도를 잘못 안 것이다. 98, 99학번은 재수강을 할 수 있도록 의결을 하였지만, 00학번은 재수강을 하도록 의결하지 않았다. 교수회의에서 재수강 금지를 의결했고, 이는 교권이다.” 00학번은 이미 3학년이다. 졸업을 단지 3학기 남겨두고 있고 전공 필수는 거의 수강이 끝난 상태이다.

이에 대한 학우들의 항의와 반발이 계속되자 지난 16일 전자과 학부생을 수신자로 한 주임교수 명의의 ‘재수강 금지조치를 학과에서 심도있게 검토하여 2003년 1학기부터 시행 예정’이라는 내용을 포스비에 공지하였다.

전자과 교수님들의 교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인가? 재수강을 금지하고 안하고는 교권이며 그에 대항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분규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재수강 금지 조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권을 앞세운 일방적인 결정과 일방적 통보에 있다. 재수강 금지에 관한 문제는 학우들에게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이런 중대 결정에 학우들의 의견이 전면 배제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충격이다. 학부수업 담당 교수님의 교권 발언은 교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권이라 함은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의미한다. 교수님들에게 학우들은 ‘외부’의 간섭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교권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 사랑으로 가르치고 배울 때 스스로 확립되는 것이다. 독단적 스승과 소시민적 제자 사이에 과연 사랑이 싹틀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과연 재수강생들이 많아지면 면학분위기 조성이 안 되는가? ‘어차피 재수강을 해야 되니까 대충 하고 다음에 다시 듣자’ 하고 끝까지 듣는 학우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점 제한까지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재수강한 결과가 학적부에 명확히 R로 남게 되는 상황에서, Withdraw란 제도를 이용하고 다시 듣게 되면 제한없이 학점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끝까지 듣는 학우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걖? 재수강 제한의 초점은 역시 초 수강생들의 피해 최소화에 있고, 이 문제는 과목 개설 분반을 증가시키고 재수강생들의 학점 평가를 따로 하는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다양한 대안이 나올 수 있는데 왜 없애려고만 하는가?

재수강 금지는 입학 후 목표 상실로 잠시 방황하다 학점을 제대로 따지 못했지만, 다시 도전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원천 봉쇄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많은 노력을 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 학우들이 잠시 방황으로 이제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 생각하는데 1분의 시간도 필요치 않으리라.

특히 이 방침은 제도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 2001년 7월 1일에 최종적으로 개정된 포항공과대학교 학칙과 학사운영지침의 재수강관련 조항에 의하면 이수한 성적에 관계없이 재수강하여 성적을 취득할 수 있고 성적은 최대 B+까지 인정되며 졸업증명서의 재수강과목은 R(repeated course)이 표기된다는 언급만이 있을 뿐 재수강을 학번에 따라 혹은 과에 따라 임의로 금지한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명백히 학칙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학생의 수업권과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학교 발전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자과가 선도하는 재수강 금지 조처는 이미 그 결정과정부터 불합리하기 짝이 없으며, 시작도 하기 전에 많은 불만과 불신을 낳고 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 암세포가 되어 다른 학과에까지 전이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