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 지곡동의 풍성한 과거를 간직한 포항공대의 웃어른
[기동취재] 지곡동의 풍성한 과거를 간직한 포항공대의 웃어른
  • 유정우 기자
  • 승인 2002.09.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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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동문을 나서면 조각공원 구석의 큰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길가에 바로 보이게 심어진 나무가 아니라서 쉽게 보이진 않지만, 그 멋진 위용과 크기에 주목되기 마련이다. 한 눈에 고목임을 알 수 있을 뿐더러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는 보는 이의 시선을 잠시 머물게 한다. 더욱이 한 그루만이 아닌 모두 일곱 그루의 고목들은 사뭇 주변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학교가 세워질 때 모든 조경 공사를 새롭게 하였는데, 왜 이곳만은 이처럼 고목이 버티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고목이어서 남겼을까. 하지만 좀 더 나무로 가까이 가보면 그 주위에 쳐진 보호대가 있고, 게다가 가끔 나무 앞에 놓여진 막걸리 한 사발마저 본다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풍겨오는 묘한 분위기, 바로 이 지역을 지키는 당산(堂山) 소나무였던 것이다.

모두 소나무 7주로 이루어진 당산 소나무는 수령 350~450년으로 추정되는 노송이며, 그 중 정면의 가장 큰 나무는 근원직경 140cm, 수관폭 17m, 높이 7m에 이르는 상당한 크기이다. 이러한 당산 소나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곳의 유래를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 후, 약 400년 전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지곡동은 오래동안 인심좋고 산수좋아 살기좋은 마을이었다. 그 후 1968년 포항제철 주택단지, 제철학원, 포항공대가 들어서면서 100여 세대 후손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땅을 팔면서도 매년 동제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당산 소나무만은 영구보존하기로 구두약속을 맺었다고 한다. 신성한 나무라 여겼기 때문이며, 소나무 이외에도 지곡동에는 동제를 지내던 건물도 지금까지 남아 매년 동제에 쓰이고 있다. 동제는 혈연 중심의 기제(忌祭)나 묘제(墓祭)와는 달리 지연성이 우선시되는 행사로 우리 민족이 살아온 생활사적 발자취가 그대로 간직된 소중하고 마을의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신을 떠나서 마을 모두가 사라지고 매년 동제를 지내던 곳마저 사라진다면 지난 날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이 소나무는 한 편으로는 개교초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마을 측에서는 지난 날의 발자취와 역사를 뒤돌아 보는 의미로 이 소나무 앞에 애향비를 세워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고, 학교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는 당산 소나무의 위치 탓이다. 우리 학교의 계획상 이곳에는 원래 오수처리장이 들어서기로 되있었고, 학술정보센터 건축 등에도 장애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주변을 보호하고 있고, 이식 방안도 모색하고 있지만 주민 정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보류 중이라고 한다. 또한 워낙에 노송인지라 이식 후 생존율도 장담할 수 없고 소나무 중에서도 뿌리가 과다노출된 것도 있다. 서로 근접한 나무는 하나는 죽일 수 밖에 없을 뿐더러 이식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액수이다. 처음에 보호를 하겠다는 약속도 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식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처럼 이식작업 역시 만만치 않아 학교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보호는 해야겠고, 애향비도 세워야겠고, 학교의 마스터플랜도 고려해야 하는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정이다. 즉, 애향비를 건립한다면 더 이상 소나무의 위치는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째 끌고 있는 이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현재 보호는 시설운영팀에서 맡아하고 있다. 워낙 노송인지라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보수를 위해 나무에 오를 때면 항상 작게나마 막걸리로 제사를 올리고 나무에 오른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사고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래되고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이 당산 소나무가 우리 학교도 언제나처럼 건승토록 지켜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