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총장像 - 직원
내가 바라는 총장像 - 직원
  • 곽동우 / 수학과 행정지원실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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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들의 희망과 의지를 북돋워주는 분이길-

1986년 내가 우리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 대학은 한창 공사중이여서 사무실조차 없어 포항제철의 한 사무실을 빌려 몇 달간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근무환경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모두의 가슴엔 뜨거운 열정과 살아있는 눈빛을 가지고 있음은 느낄 수 있었다. 평일의 야근은 거의 매일이었고, 때로는 밤샘근무에 주말도 없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것은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이란 기치 아래 새로운 대학을 만들어 가는 일원으로서의 일종의 소명의식과 주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6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적어도 내가 본 견지에서는 그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제는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대학의 곳곳에서 느끼고부터는 두려운 생각까지도 든다는 것이다. 학교의 분위기가 왜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이러한 문제들은 그 시절과 지금의 학교나 사회적 환경이 엄청나게 변한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적어도 우리대학 만큼은 하나의 큰 줄기를 세워 중심을 잡고 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평균임기 1년 2개월, 과학기술부 장관 평균임기 1년 7개월.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관들의 임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책을 펼쳐나가는데 바탕이 되는 철학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모두가 너무 급하게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자기의 임기 동안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루고자 하는 지나친 의욕 때문에 그 바탕에 뿌리내린 사고와 사회적 환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혁이란 미명하에 도입된 각종 제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담보로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수험생들과 학부형의 부담은 어떠하며 이공계 지망생의 격감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지? 이것은 각종 제도의 입안이나 도입 그리고 개선에 있어 연습이 아닌 분명한 철학과 책임을 전제로 한 마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대학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없었을까?

이제 불과 몇 달 후면 우리는 새로운 총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매번 그렇지만 새로운 총장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우리대학인들의 최대의 관심사일 것이다. 직원으로서 새로운 총장에게 거는 기대는 첫째 기본에 충실한 분이길 바란다. 우리대학의 설립배경과 건학이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한 우리대학의 현재 위상과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가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표와 희망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여유와 열린 마음을 가진 분이면 좋겠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토대로 한 비전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둘째 한국적 사고를 가진 분이길 바란다. 구 소련이 붕괴하고 난 후 미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진 오늘의 현실에서 국제화라는 것이 자칫 미국화로 잘못 인식되어 가는 듯하여 안타깝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전통적 가부장적 대가족사회의 우리 고유의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외국의 우수한 문화와 기술을 우리 체질에 맞게 소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 뿌리깊게 내린 논리적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인간적인 정과 신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분을 모시고 싶다.

셋째 우리만의 대학문화를 선도할 사고를 가진 분이길 바란다. 우리대학처럼 이공계 대학에서 흔히 간과되기 마련인 인성부분의 교육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오늘날 같이 급변하는 지식과 정보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지식을 배우고 졸업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첨단지식이라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그 지식도 불과 몇 개월 후면 상식으로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부분은 바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과학자가 되느냐 기술자가 되느냐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며 비단 학생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국가나 회사의 경영과는 다른 철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있을법한 제도들이 학교에 일부 도입되면서 아직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대학문화가 된서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개교 당시 철거민들에게 갖은 욕을 먹고 멱살을 잡혀가면서도 즐거웠고 보람있었던 그런 시절이 그립다.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총장像은 소박하지만 이것만이라도 최소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대학의 총장이 될 분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智, 仁, 信, 勇, 嚴 등은 당연히 갖춘 분이라 생각하면서 불경에 나오는 의미있는 말을 하나 소개한다. ‘天不生無祿之民 地不長無名之草’(하늘은 일이 없는 백성을 낳지 않으며, 땅은 이름 없는 풀은 기르지 않는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과 하잘 것 없는 풀 한 포기에도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는 뜻인데, 새로운 총장은 대학인은 물론 대학과 관계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과 갖게 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런 분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