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학의 어제와 오늘
미국과학의 어제와 오늘
  • 정혜경 / 인문사회학부 강사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스탠포드대의 입자가속기. 과학기술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정책의 조화로 미국은 과학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다.
최근 정부는 7T, 즉 정보통신, 생명공학, 환경, 문화컨텐츠, 나노, 우주, 로봇 등의 첨단기술분야에서의 특허출원 및 관련분야 기술 개발,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하여 한국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는 기술패권의 획득이 한 나라의 국력 및 경제력의 신장과 직결되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과학이 개인의 호기심의 충족과 학문적 진리 추구 차원을 넘어선 근대 이래로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문화 속에 녹아든 거시경제적 조건, 교육, 재정적 지원, 정치구조와 사회문화적인 조건 등이 반영된 총체적인 활동이며, 이러한 활동을 자극하는 효율적인 정책 집행이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한 구동력임을, 다음이 보여주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건국 초엔 기초고학 홀대 당해

건국 초기 미국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있었다. 국경의 확대와 미개척지의 개발에 국가적 역량이 집중되었고, 교회라는 종교적 세력이 대학의 과학교육과 연구 분위기를 위축시키는 등의 과학외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가운데, 유럽의 선진 과학업적에의 접근이 용이했던 점이 도리어 체계적인 과학연구를 위한 미국인의 동기와 태도를 결여시켰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미국인의 지나친 실용성 지향의 학문적 성향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여, 특히 기초과학연구 활동의 경우 개인의 아마추어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대학과 정부연구소 및 과학전문단체의 등장과 함께 과학진흥정책이 가시화됨에 따라, 기존의 아마추어리즘을 탈피한 전문과학자의 사회적, 직업적 위상이 강화되었다. 1847년 설립된 전국적 과학조직체인 미국과학진흥협회의 창립사에서 보여지듯, 대중적 과학지식의 확산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의 추구에 입각한 과학진흥책이 전문인으로서의 과학자의 입지를 강화하였다. 무엇보다도, 무상토지증여법(Morrill Land Grant Act, 1862년 통과)에 의해 연방정부로부터 토지를 무상으로 획득했던 각 주정부는 토지 매매의 재원으로 주립대학을 설립하여 농업 및 기술교육을 위시한 자연과학 교육의 물꼬를 틀었다.

대학교수는 질적 역량 측정 차원에서 독창적인 연구능력을 검증받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으며, 존스 홉킨스 대학을 위시한 당시 대거 설립된 연구중심 대학들이 자리잡는 과정을 통해 기초과학은 대학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도 갖게 되었다. 이 때의 미국 고등교육의 특징은 분야별, 학과별로 여러 명의 교수들이 연구에 대한 질적, 양적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과학의 후원자가 된 것은 영국의 아마추어 화학자인 스미손 (James Smithson)이 유산으로 남긴 기부금에 의해 스미소니언 국립 연구소가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특히 미국 정부과학의 강세는 20세기 초 관료제적 경영과 과학 연구력 진흥 사이의 독특한 결합을 모색했던 과학국(scientific bureau)의 성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중앙정부로부터 미 전역에 산재한 필드 실험소(field station)로 하달되는 관료제적 질서를 이용하여, 과학국은 일반 대중을 위한 전문과학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기관의 역할 뿐 아니라 연구기관으로서의 탁월한 위상과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응용과학연구 및 기술개발책의 강조로 인해 미국에서의 정부연구소의 활동은 순수기초과학 연구의 수행을 다소 포기해야만 하는 제약이 있었다.

사실 정부가 소수 기초과학자의 후원자가 된다면 과학의 실용적 효과를 기대하는 대중의 이해관계를 저버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이념에 입각하여 대중이야말로 과학의 진정한 후원자라는 견해가 팽배하던 미국에서는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19세기말부터 미국 경제의 부상에 힘입어 미국의 대기업이 사내 산업과학연구소(Industrical Research Laboratory)를 세워 과학자와 공학자를 고용하여 발명 및 특허 개발 등의 연구개발 (R/D)에 전념시킴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GE 산업과학연구소 소속 어빙 랭무어가1932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GE가 기초과학연구와 응용기술개발을 적절하게 병행하여 지원한 결과였던 것이다.

대중이야말로 과학의 진정한 후원자

개인 차원의 사설후원제 역시 과학발전을 위한 중요한 하부구조가 되었다. 1841년부터 1842년의 옴스비 미첼(Ormsby MacKnight Mitchel)의 저명한 천문학 대중강연의 수익에 힘입어 신시네티 천문대에서는 천문학 연구를 위한 정교한 반사경을 설치할 수 있었지만, 이후 지속적인 기부금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아 천문대가 결국 폐쇄되고만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릭(James Lick)과 열키스(Charles Yerkes)와 같은 거부들의 대규모 기부금에 힘입어 20세기 초에는 142개에 달하는 미국 천문대가 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등, 점차 활성화된 기부금 문화에 의한 과학연구 활동이 자리를 잡아갔다.

이러한 기부금 문화가 정점에 달한 1920년대에 등장한 과학재단, 그 중에서도 록펠러, 카네기의 민간재단이 연구소들의 중점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개인별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그란트와 펠로쉽을 부여하며, 박사후 연구인력을 양성함으로써, 화학, 물리학, 의학, 수학, 생물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발전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대학의 연구인력과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어우러진 과학 협력프로젝트 체제가 수행되었다.

MIT-TVA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위해 1933년 여름 MIT와 연방정부기구 산하 테네시유역개발공사(TVA) 사이에 '혁명적 발전시스템 power system' 구축을 위한 연구계약제(research contract)가 체결되었지만, 연구수행 과정에서 연구비 지원자인 정부측과 연구주체인 MIT 대학이 연구결과의 특허권을 둘러싸고 서로의 우선권을 주장하는 불협화음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양측간의 갈등으로 인해 MIT-TVA는 결국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과학활동의 효율적인 분업화를 위한 연구계약제는 미국의 연구개발을 진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로 작용했다.

미국 기초과학 역사상 커다란 전기는 제2차 대전 직후 과학기술계의 완만한 발전과 느슨한 대응을 한탄했던 과학연구개발국(OSRD)의 국장인 부시(V. Bush)의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라는 보고서에 근거하여 미국국립과학재단이 발족된 것이다. 의학 및 국방을 포함한 자연과학분야의 진흥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과 연구인력 인프라의 구축이 이루어져 미국은 기초과학의 위기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갖추게 된 셈이다.

2차대전이후 정부의 과학지원은 전례없이 증가하여 해양학, 재료과학, 우주과학, 고에너지 물리학, 양자역학, 전기역학, 고체물리학과 같은 새로운 분야들이 발달되는가 하면, 과학이 거대화되어가고 있었다. 거대과학은 단일한 연구목적 아래 수백에서 수천명에 이르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초고가의 실험 장비들을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협동작업을 펴는 것으로, 입자가속기, 로켓 및 우주선, 사이클로트론 장치, 허블우주망원경, 인간게놈 프로젝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 투자와 정책이 과학기술발전에 얼마나 필수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발전의 고도화와 첨단화에 힘입어 과학은 더 이상 대중의 이해와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소수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갔으며, 이러한 과학과 대중의 괴리는 곧 국가정책 수행의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대규모 투자나 정책이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일신시킨 것은 학교과학 운동과 지방자치단체의 과학축전 등의 과학대중화 운동이었다.

대입과 갈등은 조정과 조화로 승화

상술한 바와 같이, 미국 과학의 발달과 진흥은 경험주의 과학관이라는 문화적 가치에 입각한 과학의 실용주의 노선이 불러일으키는 대립과 반목, 과학의 엘리트주의와 대중적 인식의 괴리 등, 과학의 발전 방향과 전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에 의해 언제라도 위기에 봉착할 잠재적 소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계, 산업계, 언론계, 정부가 이러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갈등 및 대립을 조정, 조화시키기 위한 변증법적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오늘날의 과학기술강국을 일구어 냈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