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건학이념을 정신적 뿌리삼고 위대한 꿈 갖는 포항공대인 돼라”
[축사]“건학이념을 정신적 뿌리삼고 위대한 꿈 갖는 포항공대인 돼라”
  • 박태준 설립 이사장
  • 승인 200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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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포항공대 졸업생 여러분, 교직원과 동문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시는 내빈과 학부모 여러분.

오늘 영예로운 학위를 받는 모든 주인공들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내며, 그 동안 온갖 정성으로 뒷바라지해온 학부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세계 최고를 추구하며 이렇게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온 교수 여러분과 재단 이사, 그리고 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심심한 치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자랑스런 졸업생 여러분.

세계 일류국가들이 21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경제와 과학기술, 문화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치밀한 미래의 청사진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을 때, 우리 정부도 한국의 장밋빛 미래상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벌써 한국은 최소한 두 가지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공계 기피현상이었고, 또 하나는 정계(政界)를 진원지로 하는 이념갈등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한국사회의 힘찬 전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대두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축제를 회고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우리의 저력은 어디로부터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에는 현대사에 대한 통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근대화의 성공을 통해 이 땅에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경제와 민주주의의 토대가 완성되었고, 이 바탕 위에서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활기찬 에너지를 창조하게 되었습니다. 단군 이래 가장 신명나는 최대의 국민축제로 승화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과정, 그 배경에는 이러한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조건이 작동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붉은 악마’의 역동성이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국민적 에너지로 승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슴아프게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른바 이공계 기피현상과 이념갈등도 더욱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바로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 여러분은 오히려 과감하게 포항공대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훌륭한 국가’를 필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온 저는 여러분의 용기와 신념에 다시 한번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대학원이나 사회의 한 분야로 진출하는 여러분이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참으로 소중한 인재들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지만, 한 나라의 이공분야는 국력과 국부와 국방의 기본토대입니다. 다시 말해 이공분야가 흔들리는 경우에는 나라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도 민주주의도 흔들리게 되고, 심지어 문화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근래에 한국영화가 각광을 받고 TV드라마가 엄청난 한류(韓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그 배후에는 한국의 IT기술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공분야는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졸업생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과 사명감입니다. 흔히 인생은 스스로 설계하는 그만큼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언제나 자만(自慢)을 경계하되, 언제나 야망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길게 보아야 합니다. 십 년, 이십 년 뒤의 자기모습을 내다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여러분 중에서 무은재기념도서관 앞의 빈 좌대에 앉는 주인공도 나올 수 있고, 세계 최고의 실력자와 권위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포항공대 교수 여러분.

지난 한해의 한국 교수사회는 참으로 뒤숭숭하였습니다. 학자의 양심에 비추어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건들이 연이어 매스컴을 장식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연말에 터져 나온 이른바 ‘황우석 쇼크’는 누구보다 우리 나라 이공계 교수사회에 큰 충격과 파문을 몰고 왔습니다. 이런 사태는 우리 대학 교수 여러분의 사기에도 나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설립자로서 포항공대의 전통을 믿는 것처럼 우리 교수 여러분의 인격과 실력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 이공계가 겪었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을 여러분의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재삼 건학이념을 강조합니다. 우리 대학의 건학이념이 곧 여러분의 정신적 뿌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저의 노파심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이나 나쁜 유혹 앞에서 흔들릴 수 있는데, 이때 건학이념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면 결코 부끄럽게 후회하는 길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포항공대인 여러분.

약간의 진통을 거친 뒤에 박찬모 총장이 취임하시던 날, 모처럼 여러분에게 고언(苦言)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대학이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염려를 떨쳐 버리기 어렵다.”라고 하면서, “건학이념이 훌륭한 전통으로 확립되느냐, 아니면 초창기의 추억거리 정도로 치부되느냐, 재도약의 희망찬 발판이 마련되느냐, 아니면 정체(停滯)의 난관에 봉착하느냐.”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저의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면서 세계 일류대학을 향한 의지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졸업생과 재학생 여러분, 그리고 교수 여러분.

올해 포항공대는 드디어 개교 20주년을 맞게 됩니다. 참으로 뜻깊은 한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여러분 중의 누군가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노벨상을 수상하는 연구성과를 내놓게 된다면 정말 빛나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 이것이 달성되지 않는다고 하여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발과 도전의 계기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꿈은 꿈꾸는 사람의 것이며, 꿈꾸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간직해야하는 가장 귀중한 자산의 하나는 ‘위대한 꿈’입니다. 부디 여러분은 이 사실을 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1985년부터 저의 파트너가 되었던 우리 대학 초대 총장 고(故) 김호길 박사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고인(故人)은 포항공대가 문을 열고 첫 신입생이 들어왔을 때, “영일만 바다는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간다”고 역설했습니다. 우리가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의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지만, 세계와 경쟁하고 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아니었습니다. 영일만에서 시작한 포스코가 그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거듭 ‘위대한 꿈’을 품어야 한다고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남미의 순수한 혁명가 체 게바라도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그가 외친 ‘불가능한 꿈’이란 ‘위대한 꿈’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 모두의 노고에 심심한 치하를 보내며, 오늘 학위를 받는 졸업생들과 포항공대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