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오름돌] 이공계 위기?
[78 오름돌] 이공계 위기?
  • 이은화 기자
  • 승인 2007.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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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일간지 1면 탑으로 실렸던 의대로 편입한 우리대학 수석졸업자의 인터뷰 기사로 학내가 소란스럽다. 기사를 접한 첫 느낌은 ‘기자가 심하다’였다. 기사 내용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제하더라도, 인터뷰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개인이 받게 될 정신적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에 앞서 인터뷰 대상자의 사진 게시와 실명 언급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은 점은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려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기사에는 수많은 댓글이 올라왔고, 다른 일간지에서도 사설 등을 통해 줄이어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우리대학 비공식 게시판인 PosB도 뜨겁게 달궈졌다. 그 기자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객관적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권위있는 공과대학 학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공계 현실을 짚고자 했다. 문제의 인터뷰 기사는 이공계 위기 시리즈의 첫 번째 타자였고, 소위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공과대학 수석 졸업생의 유명의대 편입 사례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타이틀이 되었다. 이공계 종사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이번 사건에 대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분개하고 있을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이러한 논쟁을 불러왔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공대를 졸업하고 의대로 가는 것을 ‘이공계 위기’로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가 않다. 일단 통계자료 그대로 본다면, 특히 화학과 생명 관련 학과의 공대 학생들 중 의대로 진로를 옮기는 경우가 상당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명에 관계되는 현상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생명과학이나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규명하는 화학 같은 기초과학 분야는 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학과 특성상 의대와 중복되는 커리큘럼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의대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외 학과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 이러한 사례를 이공계 전체의 위기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성급한 논리전개라 할 수 있다.

한편 졸업생은 자신이 추구하는 연구자 상과 현실의 연구자 상 사이의 차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어찌되었든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공계 현실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학교 구성원간의 많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학과별 연구가 다르므로 실험실 분위기와 운영실태 역시 다른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는 한편, 랩 생활을 실제로 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과장일 뿐이지 왜곡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나왔다. 다시 말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던 것이었지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를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듯이 SCI 논문 게재 수를 늘리기만을 위한 연구, 힘든 연구실 생활, 우리나라이기에 의대·법대·경영대에 비해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등은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고 분명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 당장은 쓴 소리가 될 지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발전적 방향의 해결안이 제시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이공계 위기’라는 현실 고발을 통해 타개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한 개인의 사례를 대학 전체의 분위기로 성급하게 일반화시켰다. 또한 ‘수석 입학…’이라는 잘못된 내용의 표제가 버젓이 실린 것을 보더라도 기사의 선정성을 우선시해 보도윤리를 존중하기보다는 입맛에 맞는 응답만 발췌하고, 과잉 해석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