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있을 법한, 하지만 없을 수도 있는
[78계단] 있을 법한, 하지만 없을 수도 있는
  • 강진은 기자
  • 승인 2005.03.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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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새벽 1시 30분 경,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 원인은 뇌출혈, ‘뇌와 신장의 미세 혈관에 많은 폴립이 있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라는 진단을 받은 지 5년 만이었다. 급히 119를 불렀지만, 기구하게도 세 군데 병원을 옮기며 32시간의 죽을 고비를 흘려보낸 끝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평소 고혈압이 있었다는 진술만을 근거로 단순히 혈압강하제만을 처방하고 방치한 끝에 언어장애가 오는 단계까지, 두 번째 병원에서는 주치의라고 정해준 의사가 이미 며칠 전 출국했다는 소식을 20여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려주어 혼수상태에 이르는 단계까지. 인맥에 인맥을 탄 끝에 부랴부랴 세 번째 병원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사망률이 95%에 이른다는 2차 출혈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고, 위험해질 대로 위험해진 상태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길을 너무 둘러온 덕에, 가족 모두가 상상도 한 번 못 해본 어렵고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역사에 만일이란 없는 것이지마는, 잊을만하고 누를만하면 떠오르는 생각에 꽉 깨문 이를 부르르 떨며 눈물을 삼켰던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 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더라면, 그 때 그 의사가 있기만 했다면, 아니 아예 처음부터 다른 병원을 찾았더라면!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낡은 외양간에 갇혀있던 소들은 도둑 맞은지 오래, 우리 모두의 설마 의식과 이기주의가 낳은 사고 아닌 사고였다.

한창 공부할 아이를 붙잡아두고 어떻게 병이 낫겠냐는 어머니에게 떠밀려 출근하시는 아버지와 고3되는 동생을 두고 덜컥 학교로 돌아오던 날, 낯설지 않은 낯선 공기 속에서 나는 문득 그 때의 그 느낌과도 같은 충격과 불안감을 느꼈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자라는 여학생 기숙사 문제로 시끄러운 가운데 여러 사람이 골머리를 썩고 있었고, 크고 작은 안전 사고가 발생한 와중에는 아까운 인재 하나가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온통 비탈길과 계단 투성이인 교내를 다니자니 새삼 거동이 불편하던 어머니가 떠오르며, 장애학생이 다닐 처지가 못 되는 것은 물론 장애가 있는 부모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한 번 제대로 못 둘러보겠구나 싶어 괜스레 착잡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갑작스레 강진이 발생하여, 온통 위험한 물질과 시설로 넘쳐 나는 교내의 안전 정도가 새삼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다.

있을법한, 그러나 있을법하기에 없을 수도 있는, 없기를 바라는 문제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있을법한 문제들은 모름지기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어서 터지고 나면 참으로 먼 수습의 길을 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폭탄을 제거하기 위한 길 또한 멀고 어려운 것이겠지마는, 최소한 미리 잘 계산해보고 비교해보아야만 조금 더 쉬운 길, 그 이전에 틀리지 않고 옳은 길을 선택할 여지가 생길 것이 아닌가.

이제 거의 두 달째, 어머니께서는 몸과 마음 어디 한 군데 잘못된 구석 없이 모두 돌아오셨다. 물론 여윌 대로 여윈 몸과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이 예전의 건강함을 되찾기에는 지나온 두 달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이 필요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으레 어디 한 군데는 병마의 흔적이 남는다고만 알고 그리 되려니 했던 마음에 비하면야 그저 기적이라고만 생각하며 감사히, 또 감사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기적은 어디까지나 우연이 가진 많은 이름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있을법한,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있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문제는, 우리들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고, 말해주지 않고, 바꾸어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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