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진리는 진리를 부른다
[노벨동산] 진리는 진리를 부른다
  • 정윤희 / 물리 교수
  • 승인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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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나에게 있어 지천명(知天命)의 해이다. 인생 50은 공교롭게도 우리 학문 인생의 반을 의미한다. 우리 처지에서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고 학위하고 수련하고 그 후 대학에 자리 잡으면 보통 35세 전후가 되고, 여기서 15년이 흐르면 50이요 그러면 다시 15년이 남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지난 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세월도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나누고 싶은 생각도 갖게 된다.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지인(知人)들과 공개적으로 나누면 그것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그의 행동을 인도하는 가볍지 않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경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믿음에 있어 공중 앞에서 하는 시인(是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 준다.

공자께서 知天命이라 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본다. 유교경전을 깊이 알지 못하니 좁은 식견으로 오직 추측하여 볼 따름이나, 이전의 불혹(不惑)과 이후의 이순(耳順)을 연결하여 살펴보면 무엇인가 느껴지는 바가 있기도 하다. 知天命 이전의 삶은 뜻을 세우고 의심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무엇보다도 혼자 이루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그러나 知天命 이후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무어랄까 인생을 더 크게 보는 태도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나만의 생각일까. 知天命은 따라서 인생에 있어 획기적인 질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 같다.

처음 포항공대가 생기고 젊은 나이에 부임했을 때는 무엇보다도 목표가 분명해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뭔가 큰 대의(大義)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포항공대에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정신이 살아 있었다. 또 그런 시도의 결과를 무모할 정도로 낙관하는 낙관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낙관주의적 도전정신’은 김호길 학장의 소천(召天)과 함께 또 세월과 함께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환경적 변화와 함께, 인생의 후반부를 맞으며 뭔가 질적 변화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껏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던 것을 멈추고 주위를 세심하게 둘러보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15년이 지난 후 후회가 없겠지.

인생에 있어 기본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한 해에 300명의 학생이 들어오는 이 조그만 대학에서 삶을 보내는 나에게 가장 근본적인 기본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이 질문에 진정으로 치열하게 마주 서 본 것 같지 않다. 왜 그리 급하기만 했을까. 좀더 깊이 숙고하고 좀더 진실하고 좀더 열심히 살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어려울 것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너무 쉬운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본은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일터이니, 그 답은 ‘사랑’일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요즈음 다시 읽고 있는 한국의 슈바이쳐 장기려 박사의 삶이 그 답을 아주 실천적으로 알려준다. 신앙이 한 나약한 인간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잘 보여 주고 그리고 자문하게 한다. 지난 세월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학생들을 사랑하였는가. 정말로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육에 충실하였는가 아니면 연구라는 미명아래 내 자신의 목적을 이들보다 더 앞세웠는가. 왜 나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더 큰 인재로 길러낼 수 있을까보다 내 자신의 연구를 많이 이야기하였나.

300명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다듬어 최고의 인재로 만들어내는 것-이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기본인 것 같다. 낙관주의를 기본 품성으로 하고 모험정신을 가진, 바로 포항공대의 정신을 갖춘 학생을 길러내는 교육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300명의 1명과 3000명의 1명은 그 무게가 분명히 다르니, 따라서 우리는 학생 1명의 낙오를 방지하기 위해 10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과연 나는 그리하고 있나. 나는 학생들에게 학문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있나 아니면 그저 지식의 전달에만 머물러 있나.
장기려 박사께서 한 지인에게 한 말을 나에게 준 것으로 갖고 싶다.

“진리는 진리를 부릅니다. 진리를 외칩니다. 진리는 모입니다. 님이 진리를 사모하니 진리를 찾아 다닙니다. 님에게 진리의 향기가 있으니 말해달라고 청합니다. 님의 진리의 향기에 학생들이 모여들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