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기술유출방지의 본질적 해법은 정당한 보상
[독자논단] 기술유출방지의 본질적 해법은 정당한 보상
  • 신문수 / 산공 박사과정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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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각종 지표들은 그 어려움에 대한 우려를 날로 깊어가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핵심기술의 유출방지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는 듯하다. 핵심기술의 유출은 그나마 우리의 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는 제조업 중심의 수출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후발 개발도상국들의 경쟁압력을 버텨내야만 하는 지금, 공들여 개발한 경쟁우위의 기술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곧 국부의 유출이며, 국가 경쟁력의 손실을 의미한다.

이에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국가의 핵심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법의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지난 9일에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기술유출방지법)’안을 발의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음에 공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기술유출방지법의 제정에 대해 실질적 적용대상인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하 과학기술인)들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과학기술인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법안에 명시된 일부 독소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기술유출방지법안은 연구개발 인력의 전직제한과 경쟁업체 설립제한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기술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인의 권익이 심대하게 침해되는 것은 물론이며, 문제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모든 과학기술인을 잠재적 기술유출 혐의자로 몰고 있으며, 헌법에 보장된 취업자유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술의 유출과 기술인력의 유출을 고의적으로 혼동함으로써, 연구개발 인력의 권익은 무시한채, 기업의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고급 기술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편을 제공하고 있다.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의 시각에서는 작금의 기술유출 문제가 과학기술인의 직업윤리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는 과학기술인을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만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일 현 상태로 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된다면, 과학기술인의 연구의욕 상실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이공계 공동화 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다.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해법은 기술개발에 대한 정당한 보상 마련에서 찾아야 한다. 기술개발에 대해 적절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와 기업을 위해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이는 전체주의 시각에서 과학기술인 개개인을 억압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국내기업의 경우 19.2% 만이 직무발명보상제도를 시행 중이며, 그 중 20% 가량만이 발명을 통해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이루어지는 실시 및 처분보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60% 이상의 기업이 직무발명보상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중 60~70% 가량이 실시 및 처분보상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보상 수준이 매우 후진적임을 알 수 있다.

전직제한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보상책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만 한다. 직업을 이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면, 그 기술을 지닌 기술인력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인에게 있어 전직제한은 고유의 직업을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이들이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전직제한’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주요 핵심기술을 보호하려는 발상에는 많은 문제점이 따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태생적으로 과학기술인이 갖는 그들만의 자긍심을 높게 사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몇 해 전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어온 이공계 공동화 현상의 한 원인도 연구기술 인력들의 자긍심 저하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공계 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자긍심을 세워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과학기술이 중요한 만큼 과학기술을 낳는 과학기술인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