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파인만씨, 유감입니다!
[노벨동산] 파인만씨, 유감입니다!
  • 박상준 / 인문학부 교수
  • 승인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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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다가 우울해졌다. 일에 지쳐서 심기일전하려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그만 심정이 상하게 되고 말았다. 자정 가까운 시간의 찬바람 속에서 평소 안 하던 산책까지 하고 연구실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나의 독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저자가 끝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게 된 뒤의 상황을 적은 부분에서 멈추게 되었다.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축제가 벌어진다. 모두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와중에, 울상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이 드럼을 치던 그
의 눈에 띈다. 왜 울상이냐는 그의 물음에 “우리가 만든 것은 흉악한 거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 대목에 들어설 때 나는, 내게 남을 무언가를 기대했다. 후에 노벨물리학상을 탔다는 세계적인 이 명사가 펼쳐 보일 사유의 깊이, 과학과 현실의 문제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되었을 대가의 인생철학과 경륜, 그런 것들을 직관적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무참하게 깨어졌다. 위에 이어지는 저자의 말은 이러하다. “하지만 당신이 시작했잖아. 당신이 우리를 끌어
들여 놓고선.”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정리가 기술된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시작했고,
열심히 한 덕분에 성공했고, 이것은 즐거운 일이고,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냥 멈춘 것이다. 밥 윌
슨은 그 순간까지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은 위의 구절은, 나를 새삼 실망케 한다. 책의 앞부분을 보면, 그가 말하는 ‘충분한 이유’가 진정
충분한 것인지 그 자신 고민은커녕 제대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그저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
‘성공했으므로 즐겁고 짜릿했다’고 진술하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는, 목적의 정당성을 생각지 않고 과정의 합리적인 수
행만 고려하는 맹목적인 태도를 날것 그대로 보여 준다. 그의 말대로 그는 ‘생각하기를 그냥 멈춘 것’이다.

자기 행위의 사회적 의미와 의의를 돌보지 않는 이런 상태를 목적합리성이라 하는데, 이 유명한 과학자가 그 전형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 것이다. 그가 속한 팀이 원자폭탄을 발명했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내가 우울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적절하고도 충분한 숙고 없이’ 그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어 착잡할 뿐이다.

물론 모든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처럼 반성적, 철학적 사유에도 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필요하지도 가당치도 않을지 모른다. 모든 의사가 노먼 베쑨이나 슈바이처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어쩌면 그래서는 안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경대 학생들을 모아 놓고서 ‘세상 모든 일에 참견하는 지식인’이 되라고 외쳤던 사르트르나, 9.11 사태 이후의 동향에 우려를 표명한 MIT의 촘스키를 순진한 책상물림 학자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들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인간 삶의 조건과 역사에 비추어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지식인이다. 한 개인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간의 관계가 사물의 관계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 주는 가치들을 그들은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무용하고 무력한 듯이 보이는 이러한 정신적 가치야말로 인간 사회를 동물의 그것과 구분지어 주는 궁극적인 힘이라는 점을 그들은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고 몸소 실천해 보인 이러한 가치란 무엇인가. 모든 훌륭한 문명이 자신의 핵심이자 정수로 여겨 옹위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인간 본위의 문화’, 바로 그것이다. 문화가 문명의 꽃이라 함은 그것이 한낱 장식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러한 비유는, 꽃에 해당하는 문화를 만개하게 하고 풍요롭게 보존하기 위해 문명이 형성되고 발전해 왔음을 의미한다. 계몽주의의 후손인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 꽃은,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 주체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시민사회’의 이상
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상은 언제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우리들 각자가 그것을 인식할 때, 그리하여 그것에 비추어 자신의 행위를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 공동의 목적에 비추어 서로의 욕망을 조율할 수 있을 때, 바로 그러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이상의 추구에 있어서는 개개인의 전공이나 학식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문화란 우리 삶의 공동체뿐 아니라, 당신과 나 각 개인의 내면을 풍요롭게 해 주는 인류사의 궁극적인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산의 가치를 우리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게 해 오던 노력이, 파인만의 책을 읽다가 무력화될 뻔했다 하면 그
에게 너무 미안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