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과거사 규명은 오늘의 시각을 세우는 일
[78계단] 과거사 규명은 오늘의 시각을 세우는 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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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무은재 기념관 앞에 있는 과학탐구상의 동판에는 미당 서정주의 시가 새겨져 있다.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이 우리학교의 설립을 기념하여 이 과학탐구상을 기증하면서 미당의 시를 함께 전달해 그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개교 초기부터 새겨져 있던 미당의 시가 이제 와서 새삼스러워진 것은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과거사규명 움직임을 보게 되면서다.

미당이 과거 일제치하와 군부독재시절의 행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 그가 지은 시의 문학성과는 별개로 우리 포항공대인이 그의 격려와 당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그의 헌시가 단순히 문학성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모를 일이겠으나 과학탐구상에 있는 그의 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가 아닌가. 그리고 과학기술계의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우리대학의 설립의지에 이 사실을 비춰본다면 어색함을 넘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이제 와서 미당의 자격시비를 가린다는 것에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스스럼없이 존경할 수 있는 인격과 행적을 가진 선각자의 문구를 되새기며 교정을 거닐 수가 없는 것일까. 왜 어려웠던 조국의 환경을 딛고 일어선 선각자의 의지가 스며있는 문구를 과학 탐구상 앞에서 되뇌일 수가 없는 것인가. 거기다 과학탐구상에 새겨진 그의 시구는 아무리 되뇌어도 너무나 평이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과학탐구상에 새겨진 그의 시구는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무은재기념관 앞의 과학탐구상을 지나갈 때면, 걸음을 멈춰 그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비판받는 미당의 행적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더욱 빨리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해방 이후 과거사를 규명해 정리하는 일에 실패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반성과 참회 그리고 화해를 이루어낸 다음에도 100년도 넘어서 후배 과학자와 과학도들에게 읽힐지 모르는 과학탐구상의 동판에 미당의 시가 과연 새겨질 수 있었을까? 다시 한번 되물어볼 일이다.

미당의 시문은 새롭게 개편된 우리대학 홈페이지에도 캠퍼스 명소에 과학탐구상의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 사실을 굳이 감출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미당의 이름이 그곳에 있는 것이 우리가 과연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인 것인가?

우리가 과학탐구상 앞을 지나면서 스스럼없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몇 번 놓친 것은 작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정확히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리는 것이 과연 오늘 우리가 가진 의지인가?

과거사 규명은 오늘의 원칙을 세우고 내일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그리고 그 바램은 과거사에 대한 어떠한 평가와 기준을 요구하는가. 과거사 규명은 친일 행위자에 대한 인적청산의 범주가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개혁과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의지의 표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리고 내일을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우선 과거사를 올바르게 규명하자. 힘들게 밝혀낸 그 진실의 토대 위에서 또다시 고뇌하자. 그리고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가슴 울리는 문구를 물려주는 세상을 만들자. 미당의 문학적 재능으로도 표현하지 못한 그 감동을 담은 문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