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Postechian, Be Ambitious!!
[78계단] Postechian, Be Ambitious!!
  • 강진은 기자
  • 승인 2004.06.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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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방학, 졸업이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똑같이 교복을 입고 공부를 할 때는 모두가 하나 같은 여고생이었는데, 대학생이 되어 각자의 전공이 생기고 나니 이렇게 각양각색일 수가 없었다. 공대, 교대, 사대,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 사회복지학과, 시각디자인과, 안경제조공학과에 이어 재수 후 의대 입학을 앞둔 친구까지. 대학 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것은 실로 유쾌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던 중, 문득 교대를 다니는 친구 하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진짜 포항공대 가니까 드라마 ‘KAIST’서 보던 것처럼 로봇축구 하고 그러든?”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려는 찰나 다른 공대를 다니는 한 친구녀석이 냉큼, “나 우리 자동차 동아리에서 엔진파트 맡았는데, 너네 학교에는 이런 거 잘 하는 애들 많지?”하고 더블 어택을 감행한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뭔가 멋진 말을 해주기는 해야 할 텐데,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뭐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어물쩍 자연스러운 척 입으로 튀어나온 절반의 픽션과 절반의 논픽션은 친구들의 기대에 착 부응해 들어가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는 데 더없이 부드러운 윤활유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고백하건대, 그 때 나는 부끄럽고 창피하고 속상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 때의 부끄러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한 달간 서울·부산의 대학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자기계발에 힘쓰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보며 취재를 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보다 적성에 맞는 세부 분야를 찾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일찌감치 창업 공부를 하며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먹고 살 일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 분명한 취미생활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분명한건, 그들 모두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데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엇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참 많이 부럽고 참 많이 부끄러웠다.

친구의 말처럼, 드라마 ‘KAIST’를 보면서 가슴 뛰었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올라가던 즈음이었을까. 당시 과학고를 지망하던 나와 몇몇 친구들은 드라마 속 세계를 동경하며 공대를 향한 꿈에 분홍빛을 더해갔다. 비단 나만의 경우가 아니라, 그 시절 그 드라마를 본 공대 지망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설레였을, 일종의 ‘로망’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하고싶은 것, 내가 잘 하는 것에 ‘올인’하는 멋지고 잘난 대학생의 모습이 내 미래가 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카타르시스와도 같은 희열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물론 배우들이 잘 생기고 예뻐서 좋아했던 사람들이 없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드라마를 보며 공대를 꿈꾸었던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감 같은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지금 우리들은,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는 것일까. 포항공대생이 되었다는 사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생각 만큼 대단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실망했답시고 의욕을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눈 깜짝할 새 대학생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들의 사회생활도 코앞에 닥쳤다. 속칭 ‘빡세다’는 말로 표현되곤 하는 과제와 숙제, 퀴즈, 시험이 우리들의 대학 시절을 정의해버리도록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 1%의 자존심을 걸고, 과학과 국가와 미래를 책임질 이공학도들이 되기 위해 모여든 우리들이다. 포항공대의 이름에 나를 맡길 것이 아니라, 나의 이름이 포항공대를 빛나게 하겠다는 포부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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