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일 FTA 협상에 즈음하여 제조기술의 대응 전략
[시론] 한일 FTA 협상에 즈음하여 제조기술의 대응 전략
  • 서석환 / 산공 교수
  • 승인 2004.04.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존 제조업에 산업공학 연구성과 접목 서둘러야
농민들의 투쟁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회를 통과한 한-칠레 FTA 체결과정을 통하여 FTA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생활용어가 되었다.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란 1994년 GATT 제24조(적용영역-관세동맹 및 자유무역지대창설)에 근거하여 최혜국대우 및 다자주의 원칙의 WTO체계 하에 인정된 지역특혜무역협정으로, 협정국 간의 무역장벽의 완화 및 철폐를 목적으로 한다. 그 동안 FTA는 대부분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 등 서구유럽의 유럽연합(EU) 및 미국·캐나다·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과 같이 인접국가나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호주-태국간의 FTA 체결 등 현재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경제발전단계가 서로 다르고 국민경제가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제반 여건이 달라 어떤 방식으로 제반 무역장벽을 완화/철폐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현저한 입장차이가 있는 것이 국제통상무대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한-칠레 FTA 체결에 이어 현재 일본, 중국, 싱가포르, 태국, 아세안 국가 등과도 FTA를 검토하고 있는데, 특히 일본과는 1998년도 이래 수 차례의 쌍무협의를 통하여 협상 중이며 2005년도 말에는 한일 FTA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천하지대본의 “농업”의 마땅한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산업구조상의 상호보완성이 있기에 그 체결이 정당화되었던 한-칠레와는 달리, 한-일 FTA는 상황이 다르다. 우선, 산업구조상, 기술 성격상 한국은 일본의 모방 형태가 많아 상호보완 관계라기보다는 직접 경쟁관계에 있으며, 그리고, 한일간의 엄연한 기술적 격차로 일본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이미 높으며, 특히 일본제품에 대한 호의적인 시장을 감안하면 무역역조가 심화될 전망이다. 또한, 제품 혹은 분야 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80, 90점짜리 물건 혹은 기술로서 개방되면 중저가 제품 생산기지화가 우려되며, 중국과의 경쟁을 감안하면 추후 중국의 추격을 받아 결국 한국제품의 입지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한-일 FTA는 아직 시기 상조라고 보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최근의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이 한일 FTA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 것이 단적인 예이다 (동아일보 3월 31일자). 그러나, 현 세계적 추세로 본다면, 이를 늦추는 것만이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국가적 차원에서, 최소의 손실로, 최단의 시간 내에 일본과 격차를 줄이거나 능가하며, 일본 뿐 만 아니라 국제화에 대응하여 기술개발을 함으로써 타 지역에 대한 무역창출 효과로 타 지역에의 수출로 만회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FTA 체결 경우 미치는 영향면에서 보면,
1) 한국측이 기술, 품질 면에서 열위 산업으로서 대일 수입이 증가하는 자본재 산업 업종 (기계, 자동차 등)
2) 가격 경쟁력이 있는 업종 (섬유, 철강 등)
3) 수입 재 사용이 불가피하여 FTA로 가격경쟁력이 개선되는 업종 (기계, 석유화학 등)
4) 별 영향이 없는 업종 (반도체, 조선 등)으로 분류된다.
물론 업종별 미치는 영향을 플러스적인 것과 마이너스적인 입장의 전체적 평가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비중이 크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자본집약적-기술집약적 산업에 관하여 한일 FTA 체결에 대비한 전략을 제조공학 관점에서 알아 본다.

첫째, 국제표준을 따르는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표준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인식은 아주 미약하나, 앞으로의 세계시장은 표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제품 뿐 만 아니라 기존의 제품 혹은 기술까지도 국제표준을 목표 스펙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한일 FTA가 일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세계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전통제조기술에 IT 기술을 십분 접목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품 수명의 단기화, 고품질, 저가격 등 소위 SCQ (Speed Cost Quality)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차세대 생산 패러다임인 e-Manufacturing의 기술 개발 및 인프라 구축이다.

셋째, 모든 제품은 개방형 구조 하에 모듈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한일 양국의 부품 공용화라는 측면에서 뿐 만 아니라, 대부분 중소기업 위주의 취약한 국내 부품 산업의 열세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써, 나아가 부품시장의 세계화를 위하여 필요하다.

넷째, 기계류 등의 자본재 산업의 핵심 및 기초 기술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지원정책과도 관련된다. 핵심 및 기초 기술에 대한 장기적 지원보다는 지나친 실적 위주의 단기적인 시각이 지배해온 결과가 오늘과 같은 우려를 낳은 셈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중점 핵심기술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기술 개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무엇보다도 미래 핵심 기술에 대한 발굴 및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정부에서 기 설정한 성장 동력기술 뿐 만 아니라, 기초/핵심 기술을 포함하여, 제3국의 기술투자 유치 혹은 국제 공동연구로 연구 개발의 효율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한일 FTA 체결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으나 주어진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특히, 대표적 자본재 산업으로서 가장 열위에 있는 기계 분야의 경우, 근원적인 대처를 위해서는 거의 불가능한 시간으로 볼 수 있겠으나, 이를 계기로 중장기적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세계는 넓고 총성 없는 전쟁터도 그 만큼 넓어지고 있다. 이웃 강국 일본을 상대해야 하는 점이 부담스럽지만 세계 무대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