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정치! 나와 무슨 상관이야?
[독자논단] 정치! 나와 무슨 상관이야?
  • 허성일 / 기계 박사과정
  • 승인 200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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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여야 국회의원간의 치열한 몸싸움 속에서 ‘대통령(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음의 문답은 우리학교 총학생회 게시판에서 발췌한 것이다.

질문: 이번 탄핵안 가결에 대한 총학생회 측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총학: 우리학교 학칙상 정치적인 활동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총학생회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학교당국에서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였던 것은 과거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 학생들의 정치활동이 학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쉴 새 없이 일어났던 학생 시위와 이를 공권력으로 진압하며 휴교령을 밥 먹듯 일삼았던 독재정권 아래에서 생활하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라는 면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감에 따라 정치문화도 바뀌어가고 있다. 학생운동도 좌우 이념의 대립은 점차 퇴색하고 생활 속의 정치로 변화되고 있다. ‘정치’라는 용어가 가지는 의미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평범한 시민들이 어린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으며,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학교당국은 정치활동에 대한 일률적인 금지보다는 오히려 건전하고 올바른 정치의식 함양을 통해 사회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당국에서 우려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활동이겠으나 현재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정치활동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해마다 총학생회를 꾸려나가는 것조차 어렵지 않은가? 우리학교의 건학이념에는 ‘성실하고 창의적이며 진취적 기상을 지닌 지성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전문교육뿐만 아니라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말로만 지성인을 위한 전인교육을 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허나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없어진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해소해야할 커다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사실 평소 정치활동 금지 조항 때문에 정치활동을 못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친구 사이에서 정치는 재미없는 이야기 그래서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더 이상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보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다양한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정치인들이 정해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정치가 나와 무슨 상관이야?” 또는 “정치인은 다 똑같아”로 일관할 것인가?

우리는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른들로부터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맞는 말이다. 또한 기본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연구실에서 밤새워 연구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위해서, 어떤 사회를 또는 누구를 위해서 사용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식권에는 ‘과학과 국가와 미래를 생각하는 포항공과대학교’라고 적혀 있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국가는 어떤 국가이며,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미래인가? 그것마저 남이 정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더 이상 공부나 하는 공돌이, 시키는 일이나 잘하는 공돌이로 남을 수는 없다.

국가와 미래라는 말들이 가슴에 와 닿지 않으면 소재를 좁혀보자.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커다란 사회적 화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많은 언론이 우리 이공계를 걱정해주고 정부도 발 벗고 나서서 이것을 해결해 주려고 한다. 그 결과 올해에는 우리학교 신입생 전원이 4년간 등록금 면제라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중에 그 누가 이러한 조삼모사식의 해결방안에 만족하는가? 이공계만 문제인가? 더 어려운 인문학계도 많은데 앞다투어 이공계를 걱정해주는 언론이나 정부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진정 이공계를 위한 정책을 위해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고 그것이 제대로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 강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인터넷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이른바 ‘생활 정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치는 거대 담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생활의 모든 형태를 아우르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정치 역시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를 너무 멀게만 생각하지 말고 각자의 다양한 의견 개진과 토론을 통해 올바른 정치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학교당국도 보다 유연한 입장에서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진정으로 과학과 국가와 미래를 생각하는 포항공과대학교가 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