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문화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
[일흔여덟 오름돌] 문화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
  • 김혜리 기자
  • 승인 2000.05.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물이 생기를 띠는 5월. 조금 있으면 대학문화의 꽃이라는 축제가 ‘pause’라는 모토를 내걸고 열린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전야제, 대동제와 주점, 여러 이벤트로 짜여진 축제를 즐기자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멈추었을 때 학생들이 축제와 더불어 우리의 대학문화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수도권에서 많이 벗어난 문화변두리 지역에 소재한 우리 학교는 한마디로 ‘문화척박공간’이다. 대학생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해 폭넓은 교양수업이 필요하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건만 그를 위한 문화적 토대는 과연 필요치에 접근해 있는가. 강의실을 나서면 딱히 갈 곳이 없는 학생들, 가까운 곳에 다양한 문화공간을 가지지 못한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른 할 일이 없어 공부로 몰리게 된다는 점을 두고 ‘공부하기에 좋은 학교’라 잘라 말하는 건 어폐가 있는 부분이다.

만 13살의 포항공대문화는 아직도 제대로 된 색깔을 입지 못했다. 많은 색깔들이 난잡하게 섞인 것도 아니고 그저 무색에 가까울 뿐이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대개는 지역적, 교육적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포항의 한적한 공간에 자리잡은 것은 우리 학교가 표방하는 연구중심대학의 이름에 걸맞는 택지선택이었지만, 지방대학 그것도 학생전원이 기숙사에 사는 공과대학은 아무래도 학생들의 활동영역과 접하는 대상을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또 타대학의 학생과 교감을 나누거나 교류할 기회마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이성만이 강조되고 감성의 추구가 제한받는 교육환경에서는 대학과 사회가 원하는 지성을 키워내기가 어렵다. 공부와 놀이, 과학과 사회문화, 이성과 감성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해줘야만 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학교에서는 개교 초부터 매주 교양강연 시간을 마련하고 현재는 문화프로그램위원회가 만들어져 초청강연과 공연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공급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학문화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다. 문화란 구성원 모두의 생활 가운데 저절로 자라나고 꽃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학생들의 대학문화정착 노력이 부족한 것에서 더 문제점을 느낀다. 개교 초기 선배들이 소수의 인원만으로 동아리와 학생단체를 만들고 리더십을 발휘해 패기를 가지고 스스로 대학문화터전을 개척해 나갔던 것을 생각할 때, 학생운동이 없고 지금 총학생회까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은 학생들의 무관심과 의욕 부족 때문이라고 탓할 수밖에 없다. 팽배해버린 개인주의는 이제 스터디 그룹의 운영조차 어렵게 하고 여럿이 함께 꾸려나가는 단체의 의미까지 희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우리만의 대학문화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 학교의 특성상 대학 측에서 자성해야 할 부분도 상당하다. 문화프로그램위원회만으로 문화적 열세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신경써야 할 점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올해 처음 마련한 ‘방 도시에 세계문화탐방’은 학생들에게 의욕을 진취시키고 다양한 문화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반가운 이벤트다. 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서울 소재대학의 주변환경이 주는 각종 교양, 문화행사를 여기서는 각 동아리, 자치단체가 마련해야만 한다. 동아리가 친목모임을 벗어나 대학문화를 이끄는 선봉장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각 동아리 특성에 맞는 행사를 마련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 현재 산업공학과에서 하고 있는 ‘홍콩*대만 과기대의 과교류’와 같은 바깥과의 교류로 활발해져야겠다.

그러나 대학문화건설에 있어 이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문화의 부재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의 의식의 전환이다. 개인주의를 이겨낸 패기있는 참여만이 문화적 열세를 극복하고 우리만의 색깔있는 대학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축제, 이것은 대학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문화행사다. 축제준비위원회와 주점을 준비하는 일부 학생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를 만들기 위해 약간씩 생각을 바뀌어보자. 나의 참여가 우리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