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인간인가 시스템인가
[독자논단] 인간인가 시스템인가
  • 신정규 / 물리 00
  • 승인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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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입학했으니 올해로 입학한지 4년째가 된다. 얼마 전에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단독후보로 찬반투표가 진행되었다. 돌아보면 입학할 당시에는 총학생회가 아예 구성되지 못했었다. 그 다음해에 한 번 경선을 구경하고, 그 후 이 년째 단독 입후보에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총학생회 구성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숙사자치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입후보기간을 연장해가며 회장감을 찾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치단체들이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크기가 작지만 우리 학교도 대학이다. 학생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은 모두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요구에 대한 공급의 형태로 자치단체들이 존재한다. 자치단체의 업무의 종류는 다른 대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전체 구성원의 수와 관계없이 최소한의 필요 인원이 존재한다. 그 인원이 전체 구성원에 대하여 차지하는 비율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요구되는 비율에 비하여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언제나 적임자를 찾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구조적으로 포항공대의 자치단체들은 언제나 사람 가뭄 속에서 살게 되어있다.

자치단체들은 사람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조직에는 사람과 시스템이 있다. 무게중심을 사람에게 두는 경우,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조직의 한계는 확장된다. 반면 개인의 역량이 부족하면 조직이 쉽게 흔들리게 된다. 무게중심을 시스템에 두는 경우 조직은 안정된다. 그러나 시스템은 자신만의 생명력이 없어서 금방 경직되어버린다. 그 사이의 중간점을 찾아가는 것이 역동적인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자치단체의 시스템은 그러한 균형을 잡아나가기에는 너무나 사람에 의존적이다. 몇몇 사람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매년 최선의 사람이 나올 수는 없다.

구성원의 수의 제한은 생각보다 큰 문제이다. 구성원의 수가 우리 대학의 열배인 대학에서 1년에 회장 후보가 두 명이 나온다면, 단순한 계산으로는 우리 대학에서는 5년에 한 명이 나오게 된다. 조직을 혁신할 수 있는 사람이 물론 가끔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많다. 그런데 사람 가뭄에 시달리는 학교에서 시스템이 존재하여야 할 자리에까지 인간이 들어가 있다.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자치단체의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잦아진다.

충분한 역량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도 자치단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너무 기울어져 있는 무게중심을 시스템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다른 학교와 자치단체가 해야 하는 일의 종류가 같다고 해서 일을 하는 방법이 같을 필요는 없다. 전체적인 부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자치단체의 인원수를 늘려야 한다. 한정된 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고정된 부서로 구성된 조직형태가 아니라 당면한 과제에 따라 유연하게 팀을 만들고 해체되는 형태가 유리하다. 동시에 각 과제 진행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력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올해 기숙사자치회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위의 대안을 시도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다른 자치단체는 그 조직 특성에 맞게 다른 방법을 통하여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치단체들이 부딪힌 역량의 한계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안일한 현상유지에 급급하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점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사람은 시스템을 만든다. 만들어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조직은 얼마간 안정된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 문제점들이 발견되고 쌓인다. 문제점이 현재의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다시 사람이 나와서 시스템을 수정한다. 우리 학교 자치단체들의 시스템은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적어도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시간과의 간극을 큰 문제없이 충분히 건강한 상태로 메울 정도로 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