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우리 농촌과 포항공대
[노벨동산] 우리 농촌과 포항공대
  • 안진흥 / 생명 교수
  • 승인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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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정문 남쪽 숲에는 수십 마리의 왜가리가 둥지를 틀고 있고, 그 왜가리가 내려다보는 곳에 2천 여 평의 포항공대 실험농장이 있다. 그런데 포항공대는 왜 농장을 갖고 있을까? 농장과 공대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농장은 농대가 소유하고 연구하는 곳이 아닌가?

이 농장에는 다양한 벼 신품종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밥맛이 좋은 쌀, 건강에 좋은 쌀 등등 이러한 고부가가치 벼품종을 만들려는 목적에서 포항공대 대학원생들과 연구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과거에는 작물의 신품종은 주로 농과대학이나 농업관련 정부기관 그리고 종묘회사에서 개발해 왔다. 병에 강한 품종, 생산량이 높은 품종, 추위에 강한 품종 등 다양한 벼 품종이 지난 수 십 년간 개발되어 우리나라의 선진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국가가 선진화되고 국민소득이 증대되면서 상대적으로 농업경쟁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취약한 농업환경 및 높은 인건비 등은 농산물 생산 가격을 높게 하고 있으며, 이는 국산품이 국제시장가격에 비해 서너 배 높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400만 농업인구가 수입농산물로부터 보호받는 길은 정부의 보조와 높은 수입품관세이다. 그러나 농산물 수출국이 대부분 강대국이어서 WTO나 관계국양자회담 등에서 우리나라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압력을 매우 강하게 받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농촌을 지킬 수 있을까? 신토불이라는 슬로건하에 국산품을 부각시키는 방법이 있다. 통상압력을 최대한 버팅기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농촌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최고 10배에 달하는 수입품과의 가격 차이를 좁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격은 최상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농산물이 다른 나라의 것보다 월등하면 가격 차이가 있더라도 우리 국민이 선호할 것이고 수출도 가능할 것이다. 양보다는 질로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책임자로 있는 연구실에서는 질이 우수한 벼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벼의 돌연변이체를 다량으로 개발하였다. 이러한 변이체 집단을 사용하면 생산성이나 병 저항성 등에 관련하는 유전자를 연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밥맛이나 영양가가 증진된 품종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의 방법에서 유전자 기능이 향상되는 집단을 육성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우리 랩에서 최근 개발한 “삽입활성화 방법”은 유용 형질의 기능이 향상되는 특성이 있어 새로운 벼품종개발에 획기적인 공헌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24일 Nature 지 news feature 난에 우리가 개발한 벼변이체 집단 및 이의 활용 가능성이 소개된 바 있다.

건강유지는 올바른 음식섭취에서 시작된다. 농약 포화지방산 등 우리 몸에 해로운 성분이 적은 음식, 필수 아미노산이나 비타민 무기물 등이 고루 들어 있는 식사 등을 통해 평소에 건강을 관리한다면 면역체계가 강화되어 잔병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필수적인 영양분이 골고루 들어 있는 쌀을 개발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면 몇 배의 가격차를 감수할 소비자가 형성될 것이다. 한 예로 대부분의 성인 여성이 철분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철분함량이 강화된 쌀이 개발된다면 소비층은 20억명 이상일 것이다. POSCO의 과제 지원으로 본교 필자와 같은 과 동료 교수인 이영숙 교수는 공동연구를 통해 철분함량이 증가된 쌀품종 생산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참 성숙기에 있는 아이들과 노화가 시작된 어른들이 같은 밥솥에서 식사를 하는 전통은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높은 음식을, 어른들은 노화를 지연시키는 음식을 섭취해야 할 것이며, 어머니들은 철분이 강화된 음식을 섭취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소비자 기호에 맞는 다양한 쌀품종을 생산하고 이를 농가에 보급한다면 우리 농촌도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자유무역 환경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농사는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과대학만의 영역이 아니다. 농산물을 단순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보는 시각에서 건강유지제 내지 질병치료제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세계 쌀 시장은 500조원 이상이다. 부가가치를 높이면 시장은 크게 신장된다. 이러한 꿈을 현실화 하기 위해 무더운 날에도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포항공대 농장에서는 연구가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