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계단] 포스텍의 꿈
[78계단] 포스텍의 꿈
  • 유정우 기자
  • 승인 200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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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미 의사당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로 시작하는 연설 4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인권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40년 전 마틴 루터 킹의 이 연설은 차별받던 흑인은 물론 전 미국인과 세계인을 감동시키며 ‘인류 평등과 자유’라는 꿈을 이 땅에 제시하였다. 사회적 박해와 냉대 속에서도 개혁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연설이 백인들에게도 지지를 받으며 인권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꿈이 단순한 흑인만의 꿈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에 뿌리를 두고 미국 건국 시 헌법에 보장한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행복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르짖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연설은 모든 미국인의 가슴에 존재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 미국인을 하나로 묶으며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알리고 민권 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었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새로운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반대를 뛰어넘는 지도력이 필요하고 조직의 기반을 바탕으로 한 구성원 모두를 어우루는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해야한다.

1년 여 가까이 진통을 겪은 우리대학의 총장선임이 구성원들이 바라던 것에는 못미치게 이루어지면서 선임 후에도 선임과정의 절차, 신임총장의 리더십, 재단과 구성원 사이의 마찰로 인한 파열음은 계속되고 있다.

재단이 생각하는 꿈은 무엇인지, 교수가 바라는 꿈은 무엇인지, 학생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물론 모두들 대학의 발전을 꾀하겠지만 캠퍼스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꿈들에 대한 개방적이고 서로의 꿈을 이해시키는 자리는 마련되지 않고 있으며 일방적인 꿈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아무리 선임과정이 절차상 적법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대학의 새로운 발전과 개혁을 말하는 아젠다가 아닐까.

현재의 상황에서 일년 동안의 모진 산고를 겪었지만(설사 적법한 절차였다 하더라도) 그에 비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고 대학의 근간을 바탕으로 한 개혁적인 비전은 논의되지 못한 상태이다. 새로운 비전이 ‘이상’에서 ‘실천’으로 진화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드는 바, ‘이상’조차 동상이몽을 꾸는 조직에게 재도약의 발걸음이란 천근만근의 발걸음일 수 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도 서로 다른 ‘코드’로 일관하다 망국의 길을 재촉한 예는 수없이 많다. 조선 후기 개화파와 대원군이 그러했고 파벌에 의한 당쟁이 그러했다. 코드가 같아도 연대할 수 없다면 발전적인 모색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대학 발전의 한 길에서 동상이몽은 아니 된다. 각각의 집단이 어떠한 꿈을 꾸는지 서로 논의하고 모색하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여 구성원 모두가 뭉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집단의 꿈이 구성원 모두가 이해하고 대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동의받고 있는지 또한 한 집단만의 꿈이 강요되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신임총장은 이런 논의를 통해 모색되는 새로운 비전을 실천할 뚜렷한 의지와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이상과 이를 위한 행동이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 때는 그 노선이 시대정신에 합당할 때 뿐이다. 재도약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 재단과 교수, 학생, 직원 모든 구성원들이 시대정신에 합당한 비전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대학의 발전을 위한 ‘포스텍의 꿈’을 가져야 할 것이다.